어느날 방을 정리하다 눈길이 머문 곳은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자료집 파일들! 지난해 봄, 이곳 L.A.로 오면서 함께 가져왔던 나의 소중한 보물들이다. 교수 신부님들의 열정이 담뿍 담긴 강의록들, 도서관에서 책들과 씨름하며 정성을 다해 작성했던 리포트들과 졸업논문. 참으로 은혜로웠던 지난 시간들이 봄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마음을 가득 채운다.
1993년 성탄절, 오랜 기다림 끝에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그 날은 진정 감사와 감동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늦둥이로 신자가 된 까닭에 레지오를 하면서도 늘 신앙생활에 부족함을 많이 느꼈던 나에게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은혜로운 기회를 주셨다. 우연히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의 교리교육학과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거기에는 나와 같은 40대 주부도 신학 공부를 할 수 있는 만학도 특별 전형이 소개되어 있었다.
1999년, 마침내 입학이 허락되었을 때의 그 벅찬 감격. 당신을 향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하느님과 흔쾌히 받아주신 교수 신부님들께 진정 감사드리며,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다졌다.
교회 안에 성서와 신앙공부를 위한 여러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지만 교리교육학과에서는 신학대학 정규 교과과정에 따라서 평신도들이 하느님에 대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었다. 각 신학분야의 전공자이신 교수 신부님들의 열정적인 강의들은 질그릇 같은 우리에게 신앙이란 보화를 담아주신 하느님께로 더욱 가까이 인도해주셨고, 하느님의 놀라우신 사랑의 신비를 깨닫게 해주셨다.
대학 졸업 후 거의 20년만에 다시 시작한 공부라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교수 신부님들의 자상하신 배려로 큰 어려움없이 오히려 기다려지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고, 나이 차이가 많은 우리 동급생들과의 생활은 삶의 신선한 경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 내년 2월이면 이 곳에 교환교수로 와 있는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날을 기다리며 따스한 햇볕처럼 포근하게 감싸주고 계시는 하느님께 만학도의 작은 소망을 기도 드린다.
L.A.에서 류혜숙(마리 스텔라·대구가톨릭대 교리교육학과 1회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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