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면서
일년을 다 보내고 뒤돌아보니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 지난 날들이고 앞을 내다 봐도 더 나아질 것도 없는 미래이다. 이렇게 착찹함을 느낄 때를 두고 하는 말이 『태양 아래는 새로운 것이 없다(nihil sub sole
novum)』(전도서 1, 9)고 단언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지나 가는 한 해의 아쉬움과 다가서는 새해를 맞음에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부산을 떤다.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하여 몰려들고 새해 첫날의 일출을 보기 위해 정동진(해 뜨는 곳)으로 간다. 왜들 저럴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은 스스로 한 행위들에서 의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동물인가 보다. 의미를 못 느끼면 지금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목에도 햇순은 돋고
타성에 젖고, 관행에 맡겨진 듯한 일상 생활이지만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반복되어 지는 듯한 나날들이지만 새 날은 나에게 있어 그 이전에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한 날들이고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이기에 그 새 날들을 통하여 낡은 자신을 벗어 버리면서 새로워져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간은 희망과 기대를 걸고 있다. 새해를 그토록 벅찬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내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침체되고 더럽혀진 삶을 청산하고자 노력하면서 잘못된 길을 바꾸는 것일 것이다. 지금까지 중심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삶의 중심을 변화시키는 것이 새로운 것이다. 최선을 다하면서도 내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자신이 모든 것이 아니기에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가톨릭 교회에서는 한결같이 인간 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Theo-Centric), 또는 그리스도 중심(Christo-Centric)을 강조하면서 가르쳐왔다.
구원은 하느님께로부터
알다시피 가톨릭 교회 달력의 시작은 대림절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시기부터이다. 이 시기를 시작하면서 세례자 요한의 준엄한 선포를 듣게 된다. 우리 앞을 향하여 엄숙하게 다가서는 주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그 분의 길을 마련하라는 촉구이다. 주님의 길은 진리와 정의의 길이다. 주님의 길은 거룩함(신성함)의 길이다. 그 길을 마련한다는 것은 곧 내가 진리편에 서 있는 사람, 정의를 따르는 사람, 그리고 거룩한 생활을 영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이며 그 나라는 끝이 없을 나라이다』(그리스도 왕 축일 감사 서문송). 비록 육체적으로는 일그러지고 병들어 재생의 여지가 없는 듯 하지만 그래도 우리 자신이 새로워져야 하는 이유는 새 생명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는 그리고 우리의 희망은 죽음이 아니라 주님이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그 분의 통치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새로워져야 한다. 주님의 백성이된 나는 늘 새롭게 재형성 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여러 문헌에서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면 교회헌장 11항에 『교회는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고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새해를 준비하면서 쇄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저마다에게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하늘나라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미사때마다 자신의 가슴을 치며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을 뉘우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하느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다. 인간 안에 자리잡고 있는 의무 의식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약속을 정직하게 지켜야 한다. 인간은 약속하는 동물이다. 약속은 그 자체로서 미래 지향적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약속하지만 그 내용은 미래에 완성된다. 특히 하느님과의 약속(신앙)이 그러하다.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대림 제1 감사 서문송).
2004년(갑신년) 한 해동안 가톨릭 신문 애독자와 그 가정에 풍성한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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