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은 오랜 논의 끝에 나온 국내 최초의 생명윤리 법안으로서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문제는 독소 조항들이 많아서 오히려 생명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거나 실험, 조작의 도구로 사용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안이 통과한 데 대해 경악과 허탈감을 가지면서 잘못된 점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법안의 목적이 불분명하다. 즉 제1조에서 입법 목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 동시에 「생명 윤리 및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너무 광범위하게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률은 무엇보다도 「생명 윤리 및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그 목적이 돼야 한다.
둘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제7조)의 구성이 잘못됐고 운영 규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위원회의 1/3을 정부 부처의 장관(처장)으로 구성한다고 규정하는데, 이는 그 운영을 정부 의도대로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유럽 등 많은 나라에서는 정부 관료들과 생명공학산업계 해당자들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셋째, 인간 배아 등의 생성, 연구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제11조 이하는 삭제돼야 한다. 배아는 하나의 인간 생명으로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명한 자연과학 잡지 「Science」지에서는, 2002년 7월 4일자 헬렌 피어슨(Helen Pierson)씨의 논문을 통해서 난자, 정자가 수정된 지 24시간 이내에, 지금까지는 원시선이 나타난 이후에 결정되는 것으로 간주된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곧 배아에서 신체 구조는 수정 후 수분 내지 수 시간 내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정된 지 14일 이후에야 배아가 생명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한다는 종래의 주장은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비과학적인 것이다.
넷째, 유전자 검사기관(제24조)과 유전자 검사에 관한 내용(제30조) 또한 우려되는 바가 크다. 제24조에서는 유전자 검사기관 설립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그저 신고하는 것만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는 상업화를 비롯한 인권 침해의 위험성이 매우 높고 유전자 검사 또한 그 부작용이 매우 심각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러한 법률이 시행된다면 무고한 생명(수정란, 배아)의 희생이 야기될 것은 뻔한 일이다. 법안 입안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바른 절차이기는 하다. 그러나 생명의 존엄성과 같은 문제는 다수결 원칙으로 결정될 사항은 결코 아니다.
끝으로 왜 이 법률이 당장 시행되지 않고 내년에 가서야 시행되는 것인가? 아마도 지금까지의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가 생명공학 산업계에 투자한 지원이 막대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즉 지금까지 투자한 비용이 헛수고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종간 교잡 행위를 비롯해 배아를 이용한 반생명적인 실험, 연구가 중단되기 때문에 올해까지 묵시적으로 이를 허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반생명적 법안을 보면서 개탄을 금치 못하며 법률이 시행되기 전까지 개정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세기 법학자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이 될 자는 이미 인간이다』(Homo est qui est futu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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