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에게는 삶의 동질성이 있습니다. 태어나서 삶의 여러 가지 사건 속에서 살다가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 말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가난한 이나 부자, 권력자나 민초들 어느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이 필요하다는 고백이 더해집니다.
저는 얼마 전 요한 바오로 2세의 즉위 25년에 관한 글을 쓰다가 교황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삶의 동질성을 잘 이해하시고 그것을 실천하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은 참으로 살기 어려운 한 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2004년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합니다. 정치가 혼탁하고 경제가 활기차지 못하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어 있습니다.
2004년에는 이런 불안한 요소들을 제거할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저는 정치나 경제의 변화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희망을 만드는 일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섰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교회가 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고 반문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교회가 아닌 그리스도인들이 하자는 것입니다. 그 이유라면 교황께서도 몸소 보여주셨듯이 인간에 대한 사랑때문입니다.
세상은 무한경쟁을 요구하며 그 큰 흐름 속에 모든 사람이 동참하기를 요구합니다. 경쟁에서 이기면 엄청난 대가가 있다고 외칩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복음일까요? 이것은 약육강식의 법칙입니다. 아니 오히려 숲 속의 법칙은 나름대로의 자비가 존재합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한 인간이 다른 삶에 해를 끼친 결과를 우리는 2003년 충분히 경험했고 아파했습니다.
저는 개신교의 목사입니다만, 개신교나 천주교나 그리스도교라는 큰 틀 안에서는 한 가족인 우리들이 세상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요소요소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신앙하면서 얻은 무한한 위로와 감사, 평화와 화해가 세상의 풍파로 인해 찢기고 상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일에 한국 천주교회가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은 소명을 받은 몇몇 사람의 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천주교의 용어 중에서 아주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성소」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가정성소」, 「직장성소」 이렇게 상용할 수 있을까요? 개신교에서도 「사역지」라는 말이 이와 비슷한데 이 말은 좀 일방적인 감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즐겨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소」라는 말은 내가 어디에 있든지 거룩한 몸가짐과 마음가짐으로 임할 것을 요구합니다. 생동감 있는 단어입니다.
2004년, 우리는 큰 희망을 안고 이 해를 맞았습니다. 그 희망이 또 실망과 좌절로 끝나지 않도록 우리 삶의 터를 「성소」로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희망이 더 큰 희망을 잉태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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