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가 낙태 문제에 관해 지극히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가톨릭교회법은 어떤 경우에도 신자들의 낙태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반면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의 장기기증을 적극 권장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5년 반포한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 제86항에서 『…전적으로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이러한 영웅적인 행위들은 생명의 복음에 대한 가장 장엄한 경축입니다… 이러한 행위들 중에서 특히 칭찬할 만한 예는 바로 윤리적으로 합당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장기기증입니다. 이것은 다른 희망이 전혀 없는 환자에게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더 나아가 삶의 기회를 주고자 행해지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와 같이 가톨릭교회는 장기기증을 이웃사랑의 적극적 실천의 한 형태로 찬양한다.
여타 기성 종교들도 가톨릭과 비슷한 입장이다. 프로테스탄트와 이슬람은 이웃사랑의 실천이라는 이유에서, 불교는 보시(布施)의 기회라는 점에서 장기기증을 긍정적으로 보고 찬성한다. 다만 유교사상에서는 신체 일부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되어 왔다.
현대 의학의 발달 덕분에 이식할 수 있는 장기 및 조직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졌다. 장기로는 신장, 간, 심장, 폐, 소장 등의 이식이 가능하며 각막, 골수, 심장판막, 췌장도세포, 뼈, 인대, 연골, 피부 혈관 등의 조직이 이식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69년 가톨릭의대 부속 성모병원에서 최초의 신장이식 수술이 성공한 이후 현재까지 약 2만 여건의 장기이식 수술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약 95%가 살아있는 자의 장기기증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최근 매년 이루어지는 이식수술의 약 90%가 이러한 생체 장기기증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서양과 정반대되는 특이한 현상으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기 이식을 우리 보다 먼저 시작한 서양에서는 사체 기증, 특히 뇌사자 장기기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이유는 영국, 스페인,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 외국에서 생체 장기기증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에서 생체기증은 가까운 혈연관계에 국한시키고 있으며,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 생체기증을 할 경우에는 국가에서 정한 위원회에서 허락을 얻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2월부터 시행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의해 뇌사자로부터의 장기 적출이 허용되고 있으나, 뇌사자 장기기증은 좀처럼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장기이식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해서 앞으로는 서양처럼 생체기증을 줄이고 뇌사자 장기기증을 늘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2월 국내 연구진이 동물의 장기, 특히 돼지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는 깜짝쇼 발표가 있었다. 이 연구는 초기 단계에 불과하고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려면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러한 돼지를 가리켜 유전자 변형동물(GMO)이라고 부르고, 이 돼지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경우를 이종이식(xenograft)이라고 한다. 이들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이 궁금하다.
교회문서를 검색해보니 교황청 생명학술원이 2001년 9월 발표한 「이종이식의 전망: 과학적 측면과 윤리적 고찰」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문서는 이종이식과 관련한 생명윤리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포함하고 있다.
건강의 위험과 관련해서는, 이 분야의 연구 경험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으므로 신중한 접근을 요청하고 있다. 유전자 변형동물에 관해서는, 『…동물을 존중하고 생물 종의 다양성을 보호하며 인간에게 중대한 혜택을 가져올 목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유전자 변형을 가하거나 인간 기원의 유전자를 이용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공식문건이 이종이식을 조건부로 허용한다는 점은 놀라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장기기증과 장기이식에 관대한 가톨릭교회의 기존 입장이 이종이식을 허용하는 데까지 확대된 것일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