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이 세상이 있다. 이 세상은 내가 가까이에서 쉽게 볼 수 있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일상의 물건들, 집, 거리, 산과 하늘부터 거대한 은하와 우주로 구성되어 있고, 또한 내 몸 안의 60조가 넘는 세포를 비롯하여 수많은 미생물들과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 마디로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거시 세계를 채우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물질들도, 미시 세계를 채우고 있는 온갖 미세한 생명체들과 원소들도, 나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나의 삶이 어디서 유래하느냐고 물어보아도, 삶의 의미는 무엇이냐고, 인간은 무엇이냐고, 죽음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고, 그리고 나아가 신이란 과연 존재하는 거냐고 물어보아도 아무런 답이 없다. 이런 질문에 대해 존재 사물들은 절대적인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를 통 털어 말다운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나와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뿐이다. 삶에 의미가 있다거나 없다고 말하는 것도 나와 주변의 사람들이고, 죽음 다음에 무엇이 있다거나 없다고 말하는 존재도 역시 그러하며, 하느님이 있다거나 없다고 말하는 이도 여전히 그러하다. 어떤 사람은 자연을 보고 창조주 하느님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자연만이 존재할 뿐 그 이상의 것은 인간의 상상이 그려낸 허상일 뿐으로 여긴다. 똑 같은 우주를 여행하고 온 우주인들마다 그것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대한 반응이 다르다. 유리 가가린은 우주 어디에도 신이란 존재는 없더라고 했고, 존 글렌은 우주에서 하느님의 창조 신비를 더욱 분명히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유리 가가린에게는 하느님은 존재하시지 않는 허상에 지나지 않고, 존 글렌에게는 엄청난 존재이신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의 인식과 마음이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객관적 사물을 현재 우리가 가진 오관이 지닌 능력으로 감지하면서 우리의 이성과 의지 그리고 감정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는 단순히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것이다.
삶에 의미가 있다고 보고 싶은 사람이 삶에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고, 죽음 이후에 새로운 삶이 있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그러한 삶에 대한 믿음을 지니며, 하느님이 계시기를 원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또한 삶은 의미가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삶이 좀 더 의미 있게 다가오고, 죽음 이후에 영원한 삶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이 다가오며,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사람에게 더욱 분명하게 다가오신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의 창조에 한 몫을 하는 참으로 소중한 존재이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도 강요하시지 않는다. 나는 하느님께서도 나의 자유를 존중해 주시는 자유로운 사람이며, 나의 믿음은 외부에서 강요된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나의 온 삶과 인격을 동원한 또 하나의 창조행위이다. 나는 외부의 누군가가 뛰어난 이론과 모범적인 실천으로 신앙을 나에게 확신시켜 주어야만 하는 그런 가만히 있어도 되는 수동적인 존재만이 아닌 것이다. 나는 나의 삶의 주인공이고, 내가 생각하고 믿고 행동하는 모든 것의 주인이다. 주인공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에게 이 세상도 삶도, 이웃과 하느님도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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