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초년시절, 지방에서 갓 상경한 나는 서울이란 도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황량함. 나는 어느 사막에 홀로 불시착한 느낌이었다. 성북동에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산보를 나선 저녁이면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공연히 서러워져 목적도 없이 내달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긴 뜀박질을 마친 어느 밤, 나는 목을 축일 생각으로 유난히 불빛이 환한 슈퍼에 들어섰다. 그곳은 24시간 불을 밝히고 영업을 하는 편의점이었다. 어찌 보면 상업주의의 정점이라 할 그곳에 내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귀하게만 생각되었다. 그날부터 편의점은 내 저녁 산보의 목적지가 되었고, 나는 거의 매일 그곳에 들러 목을 축였다.
무료한 저녁이면 불러내어 차 한 잔 나눌 만한 벗들이 생긴 후에도 나는 편의점을 자주 드나들었다. 전자렌지에 데운 삼각김밥에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면 만족스러운 식사가 되었고, 가끔 친구와 동행한 자리라면 거기에 작은 컵라면 하나만 추가하면 되었다. 글쟁이라는 직업을 핑계로 야행성이 더욱 심해진 후로는 아예 편의점 가까운 곳에 하숙방을 잡았다. 글이 풀리지 않거나 밤샘 작업 후 이마에 미열이 번질 때면 나는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거나 군것질거리로 입매를 하다 보면 문득 글의 실마리가 풀리기도 했다.
편의점 유리벽을 통해 본 새벽거리와 여명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닮았다. 어제의 피로를 다 풀지 못한 채 이른 출근을 하는 사람들은 탄광 노동자를 닮았고, 편의점에서 산 우유를 급히 마시며 사라지는 사람들은 감자 먹는 사람들을 닮았다.
우리네 삶은 오늘도 곤고하겠지만 그래도 세상은 또 다른 하루를 맞고 계속되리라고, 편의점의 유리벽은 내게 일러주었다. 편의점 모든 점원들이 안녕하기를, 오늘 편의점을 다녀간 모든 행인들이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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