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년 하면 「갑신정변」이 떠오르는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총선이 있는 올해, 뭐가 달라져도 크게 달라질 성싶은 예감이 든다. 아니, 정말로 달라져야 한다. 좋은 의미의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 소망을 가져서인지 「2004 총선 물갈이 아줌마 연대」 발족을 알리는 사진과 기사가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젊은 어머니들까지 아이들을 보듬고 나선 것이다. 이 땅의 어머니가 스스로를 아줌마라 부르면서 나섰다. 그리고 그들은 「아줌마가 아이 낳아 편안히 잘 키울 수 있는 생활정치」를 바라고 있다. 이 소박한 꿈은 꼭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판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깨끗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건 그 판에서 활동하는 그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럴듯한 소리는 혼자 다 하면서도 거짓말이나 하고 말을 바꾸며, 검은 돈이나 이권 챙기기에 정신이 없는 모습들 말이다. 그래서 인지 비교적 참신하게 느껴지던 사람들도 그 판에 뛰어들었다가는 구정물만 뒤집어쓰고 나오기 십상이다. 그 어느 판보다도 정치판에서는 「물러날 때」를 잘 찾아야 한다. 벌써 몇몇 정치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참 잘한 일이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 출마 고사를 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는 멋진 정치인도 있어서 우리는 행복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행위는 정치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정치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큰 충돌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한다고 목에 힘을 준다. 당리당략이나 제 주머니를 챙기지 않고 교통정리만 잘한다면 그건 맞는 말이다.
정치판에는 그것이 갖는 메리트가 있고, 또 그것은 마약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떤 이는,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정치병을 죽어야 낫는 병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일을 떠맡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선거혁명을 꿈꾸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아줌마들까지도 「물갈이」를 외치며 나서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정치공동체의 생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은 이렇다.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교회는 모든 세대를 통하여 그 시대의 특징을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해줄 의무를 지니고 있다. 정치 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해서 존재하고 그 안에서 정당화된다.
공동선은 집단이나 구성원 개개인이 좀더 완전하고 쉽게 자기 완성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사회생활의 여러 가지 조건들의 총체를 말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공동선의 촉진을 위하여 사용하는 자유투표의 권리와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 정당들은 당리를 공동선에 앞세워서는 절대로 안된다.
지난주 가톨릭신문에는 「가톨릭 정치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렸다. 이 특별기고는 『가톨릭 정치인이라고 하면서 국가정책 결정에 얼마나 가톨릭 신앙과 정신에 입각해 활동해왔는지』를 묻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자신의 정치적 야망에 신앙과 종교를 수단으로 끌어들이지 말고 신앙에 걸맞는 소신있는 정치인이 되기 바란다』며, 『지친 삶에 희망을 주는 삶이 되기 바란다』고 끝을 맺고 있다. 총선을 앞둔 이때에 아주 적절한 지적이라 할 것이다.
사실 제일 바람직한 것은 정치인들이 스스로 제 할 바를 알아서 해주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가 보다. 벌써 일부 정당에서 이뤄지고 있는 공천심사 작업에 실망의 목소리가 높다. 역시 정치 현실은 연일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정치권력을 얻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정당들은 국민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나보다. 그러니 이제는 나라의 주인인 우리가 정신 바짝 차리고 나서야 할 차례다.
그래도 가톨릭 신자 정치인들에게 꿈을 하나 말해본다. 그간에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면 보속하는 맘으로 이번 선거에서는 쉬었으면 한다. 걸핏하면 정치인들이 자신의 잘못에 고해성사 운운하는 표현을 하는데, 이제는 말로만 하는 고해성사는 그만두라는 것이다. 고해성사에서 「고백」이 중요하기는 하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보속」도 해야 한다. 그걸 아는 신자라면 보속하는 맘으로 한 차례의 선거에서 근신하라는 말이다. 그런 맘으로 임한다면 우리 정치판에도 희망이 있다. 정치적 죽음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근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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