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구관구 가톨릭 교수회에서 주관하는 세미나에 초청되어 「환경과 영성」에 관한 강의를 했다. 이 강의에 대한 교수님들의 반응이 좋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생물학을 전공하신 교수님 한 분이 질문이 있다면서 다가와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생명은 도대체 무엇입니까?』라는 화두를 꺼냈다. 그분이 어떤 고심을 하셨는지 인간적 사고와 탐구의 어떤 한계에 봉착해 보셨는지 공감할 수 있었기에, 깊은 연민의 정을 느꼈다. 나 역시 같은 종류의 고심을 오랫동안 해 왔었기에 그분의 노고와 고심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지면을 통해 그분께 답을 드릴 겸 내가 그간 이 문제에 대해 고심하고 탐구하여 정리한 것을 소개할까 한다.
창세기 3장 18절 이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야훼 하느님께서는…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하나하나 진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다 주시고는 그가 무슨 이름을 붙이는가 보고 계셨다. 아담이 동물 하나하나에게 붙여준 것이 그대로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다』
누구에게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어떤 이름을 주느냐는 것은 그 아이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대개 집안에서 가장 어른이신 할아버지나 큰아버지 또는 아이의 아버지가 이름을 정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식물을 비롯한 사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그 존재의 본질을 접하고 규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종류의 생물이나 물질을 발견하면 이름을 붙이는 데에 매우 신중한 자세를 갖는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만드신 생명체들을 아담 앞으로 데리고 오셔서 아담으로 하여금 이름을 붙이게 하시고 아담이 붙인 이름이 그대로 그 생명체의 이름이 되었다. 하느님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이름을 붙이게 하신 것은 그 생명체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규정하게 하신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명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존재는 누구이며, 어떤 대답이 가능할 것인가? 현대의 생물학자들은 생명체의 구조와 작용원리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짐작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알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만든 단계에 이르러 있고, 앞으로 더 알아낼 가능성은 짐작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서 끊임없이 활동하고 증식하는 생명체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다. 생물학자들은 아직도 생명체의 구조와 작용원리를 탐구해 나가면 그 정체를 밝혀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생명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과 생명체의 구조와 작용원리를 알아내는 것은 같은 차원의 것이 아니다. 생명체의 구조와 작용원리를 알기 위해 인간이 지금까지 수행해 온 방식으로 아무리 더 탐구하고 더 많은 지식을 쌓아간다 해도 생명의 정체에 대한 답을 얻어 낼 수 없다. 그것은 나의 작용을 제외한 외부에서 해답을 던져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담이 한 일을 해야 한다. 아담은 하느님이 만드신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어 그 동물의 본질을 규정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생명의 정체를 무엇으로 보고 싶은가? 여기에 생명의 정체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이 우주 어디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던져 주는 해답으로도 속이 시원하진 않다. 내가 어떻게 보고 싶은가, 어떻게 보는가가 정립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문제에 단순히 수동적인 존재이기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존재이다.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도록 불린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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