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3회에 걸쳐 생명윤리법, 호스피스, 장기이식을 주제로 다루었다. 오늘은 임상연구의 윤리에 관한 얘기로 필자에게 허락된 마지막 지면을 채우고자 한다.
임상연구(clinical study)란 병원 등에서 연구자가 상업적 또는 순수학술 연구의 목적 하에 인간 피험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의약품, 시술법, 의료용구 등을 시험하는 일체의 행위를 가리킨다. 가장 흔한 예는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대상으로 신약을 실험하는 경우이다.
우리나라에는 2003년 9월 현재 총 79개의 임상시험실시 기관이 있고, 그 수는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 중 절반가량이 수도권에 위치하고, 나머지는 전국 각지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1996년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이래 국내 임상연구의 수준을 국제적 기준에 맞추기 위해 법령을 마련하고 개정을 거듭해 왔다. 그 결과 이제 우리나라의 임상연구 관련 법령은 선진국 수준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에 이르렀다.
임상연구의 윤리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 임상연구심사위원회이다. 흔히 IRB라고 불리는 이 위원회는 연구계획서, 변경계획서, 피험자로부터 서면동의를 얻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나 제공되는 정보를 검토하고 지속적으로 이를 확인함으로써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피험자의 권리, 안전, 복지를 도모하기 위해 시험기관 내에 독립적으로 설치한 상설위원회이다. 5인 이상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이 위원회는 기관 내에서 실시되는 임상연구에 대해 그 연구계획의 과학적 타당성 및 윤리적 건전성을 심사하여 승인하고, 연구진행을 감독하며, 그 연구결과를 보고 받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짐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 임상연구에서 몇 가지 윤리적 문제점이 발견된다. 첫째, 국내 임상연구기관의 IRB의 활동이 기관마다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병원의 IRB는 표준화되어가고 있는 반면, 대학과 연구소에는 아직도 IRB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다. 생명과학 SCI 국제학술지에 연구 결과를 출판하려면 임상연구가 IRB 심사를 거쳤음을 밝혀야 하는데, IRB가 설치조차 되어 있지 않은 기관의 연구자들이 어떻게 매년 연구 업적을 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IRB 설치를 의무화하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는 2005년부터 점차 개선될 전망이다.
둘째, IRB를 구성할 때 해당 시험기관과 관계없는 외부인 1인 및 종교인, 변호사, 윤리학자와 같은 비의료인을 1인을 포함시키도록 한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인간 피험자를 보호하고 독립적이며 공정한 심사를 위해서는 비의료인 및 외부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한편, 이러한 문제점은 임상연구 관련 연구윤리 지식과 경험을 겸비한 국내 전문가 숫자가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비의료인, 외부위원 후보자를 발굴하고 교육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셋째, IRB의 독립성이 결여되어 있다. IRB의 모든 위원들은 임상연구의뢰자 또는 임상연구자책임자 등의 어떠한 간섭과 압력으로부터 독립된 상태에서 시험계획서를 심사해야 한다. 독립성 보장을 위해 IRB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많은 경우 임상연구기관의 장이 IRB 위원장을 임명한다. 이러한 관행은 시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임상연구 윤리 수준을 현재보다 높이기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식품의약품안전청을 비롯한 정책당국은 IRB를 모범적으로 구성, 운영하는 임상연구기관에 대해 인센티브(예: 실사 면제) 제공을 통해 규정 준수를 유도하는 한편, 규정 준수를 태만히 하는 기관에 대한 행정 지도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정책당국은 임상연구기관으로 하여금 임상연구비의 일정액을 유보하여 임상연구심사위원회 참석 위원들에게 회의 수당으로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수당의 적정 수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임상연구연구자 및 IRB 위원들에 대한 계속 교육이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책당국은 관련 기관 및 기구(학회, 제약회사, 임상연구기관, 국제보건기구)와의 협조 하에 임상연구 워크숍, 세미나 개최를 지속적으로 유도하고 지원해야 한다. 한 예로 임상연구 교육수료증을 받은 자에 한해 임상연구 신청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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