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미도」가 개봉 54일 만에 관객 천만 명을 돌파하였다. 15세 이상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 꼴로 본 셈이라고 한다. 요즘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하여튼 이제 영화는 어쩌다 한번 사치스럽게 하는 데이트가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영화는 이제 우리에게 있어 TV처럼 환경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언젠가 일본의 철학자 이마미치 토모노부 선생에게서 들은 독일의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에 관한 한 에피소드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로마노 과르디니는 뮌헨대학교에 교수로 초빙되었는데, 그곳 대강당에서 매일 저녁 일반 강의를 하였고, 그 강의의 테마가 「예술을 통하여 신앙에로」였다고 한다. 어느 날, 슈바빙 거리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이마미치 선생은 로마노 과르디니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때 선생은 과르디니에게 영화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다. 과르디니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고 한다.
『영화는 20세기가 되어 완전히 예술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예술이 나온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문학이라고 하는 로고스(언어)로 전개되던 것이 빌트(이미지)에 의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포에지(시)마저도 빌트에 의해 전해지며 성공한 것이 영화라도 생각합니다. 문학, 연극, 음악, 자연이 움직이는 회화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화는 새로운 종합예술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비디오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대에 과르디니는 또한 그리스도교의 위기를 예감하며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지금까지의 선교는 다른 나라에 가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다가오는 세대에 선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때 가서는 교회가 말하는 언어를 대중이 더 이상 듣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릴 것이므로, 영화라고 하는 예술을 통한 새로운 선교의 방법도 고려해야만 할 것입니다』
과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과르디니의 예언처럼 서구 교회는 텅 비게 되었으나, 영화산업은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사실 19세기말, 라디오와 영화가 발명된 순간, 수천 년에 걸친 문자의 독재, 수백 년에 걸친 활자의 독재는 끝났다. 그리고 이를 소급하여 확인시켜준 것은 TV의 출현이었다. 활자의 시대로부터 영상의 시대로의 전환은 TV의 출현과 함께 돌이킬 수 없는 과정으로서 증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미 1958년 11월 일본의 월간지 「사상(思想)」에 실렸던 키요미즈(淸水幾太郞)의 논문 「텔레비전 시대」는 지금 읽어보아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독서활동이란 인간이 리얼리티를 결한 활자에 생명을 불어넣어 스스로 리얼한 것을 만드는 집중과 긴장의 작용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의 시청활동은 독서활동 끝에 나타나는 이미지로부터 시작한다. 예전에 어른은 문자로 된 책을 읽고, 아이들은 그림책을 본다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어른도 또한 그림의 세계에 살고 있다…. 활자 시대의 역사에 있어서는, 영상화될 수 없는 것과 영상화될 수 있는 것이 무차별하게 활자에 몸을 맡겨왔다. 영상화될 수 있는 것을 영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활자에 의해 보여주고 또 파악하려고 우리는 무의미한 노력을 거듭해왔다. 텔레비전은 영상화될 수 있는 것을 영상화함으로써 우리를 무의한 노력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다. 그리고 활자를 사용하는 미디어를 그 본래의 영역에 있어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활자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영역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텔레비전의 시대는 오락을 가지고 시작한데 비해서, 활자의 시대는 성서를 가지고 시작되었다. 텔레비전이 돌파할 수 없는 벽 저편에로, 활자는 우리를 인도해 가고, 이 영상화되지 않는 세계에 비추어, 영상화된 된 세계의 의미를 밝혀줄 수 있다… 신문은 활자만이 도움이 되는 영역에 터를 잡고 새로이 다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3월이 시작된다. 대학 캠퍼스에는 또다시 새순으로 초록빛 물이 들 듯 신입생들의 들뜬 왁자지껄함으로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수업시간에 「희랍인 조르바」처럼 『그 많은 책 쌓아놓고 불이나 싸질러버려라. 그러면 아냐, 혹 인간이 될지?』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아직도 많은 강의실이 영상과는 거리가 먼 백묵 칠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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