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들의 인사이동이 잦은 시기이다. 필자도 길지 않은 사제생활 동안 대여섯 번 이삿짐을 싸고 풀고 하였다. 학교에서 같이 일하시는 선배신부님도 이삿짐을 싸느라 분주하다. 어두운 표정은 아니었지만 무거운 표정이다. 새임지로 떠나면서 막연한 불안감과 새로운 기대가 교차하고 있겠지.
특히 본당사목 사제들에겐 정들었던 사람들을 남겨 두고 떠난다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만남도 참 어려운 일이다. 새임지로 떠나는 사제들을 보면서, 온 세계의 높다는 산봉우리는 다 올라가 보았다는 라인홀트 메쓰너가 생각났다. 그 위대한 등반가도 높은 산을 오르기 전에 두려움에 울면서 짐을 챙겼다고 하더니, 아마 사제들도 이삿짐을 싸면서 그와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 새로이 만나야 할 사람들과 새로이 주어질 과업들. 어떻게 잘 감당해 나갈까.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그저 좋은 도구로 쓰여지면 그만이겠지만 인간으로서 느끼는 아련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특히 새임지에서 첫날밤 침실에 누워 보는 천장무늬의 낮설음이란…. 박해시대 때 프랑스 신부님들의 삶을 생각하면 너무 안이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그분들은 제대로 된 음식도 없이 흙바닥에 주무시면서 같은 집에 이틀 이상 머무를 수도 없었다는데…. 그리고 결국은 시퍼런 칼날에 희생되셨는데….
새임지로의 이동이라는 것은 공간상의 움직임이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매순간을 지내면서 다른 시간으로 이동을 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도전 앞에 직면해 있지 않은가.
내일 아니 당장 나에게 다가올 새로운 만남들과 과업들, 매일 새임지로 떠나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좀 더 숙연한 마음으로.
새임지에 가신 신부님들! 힘 내이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