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서 천동설의 세계관으로 전하는 세상 창조 이야기를 오랫동안 글자 그대로 믿고 있던 교회는 19세기에 접어들어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하자 상당한 어려움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건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아직도 성서해석학이 현대와 같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던 당시, 진화론과 이것을 바탕으로 한 무신론은 교회에 커다란 도전이었고, 교회는 어떻게 응해야 할 지 잘 몰라 당혹해 했다. 그러면서 일부에서는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 분명한 만큼 진화론은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특별히 재고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평가를 들은 당시 진화론자들은 더욱더 기세를 올려 창조론과 그것을 주장하는 교회를 공격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은 진화론자들과 창조론자들 간에 대화보다는 싸움이 횡행했던 시기로 볼 수 있다. 그러다가 떼이야르 드 샤르뎅신부가 진화론을 수용하는 창조론을 발표함으로써 양편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 그 이후 진화론자들과 창조론자들의 대화는 늘어갔으며 이 대화는 아직도 진행 중에 있다. 양측의 주장을 들어보면 서로 팽팽하다. 어느 한 쪽도 만만하지 않아 평행선을 긋고 있다. 진화론자들의 주장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고, 창조론자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 대화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그런데 창조론만이 절대적인 진리임을 주장하면서 진화론을 전혀 수용하지 않을 듯하던 교회가 근래에 들어 진화론을 단순한 가설로만 보지 않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진리와 진리는 상호 모순될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여유 있는 자세로 자연과학자들의 연구와 주장을 존중하고 있다.
교황님은 『교황 비오 12세가 발표한 교황 칙서 「인류의 기원」에서 인류와 인간의 소명에 관한 신앙적 교리와 진화 사이에는 아무 충돌이 없음을 이미 천명한 바 있습니다』고 말씀하시면서, 『이 교황 칙서가 출판된 이후 거의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새로운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진화가 하나의 가설 이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지식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발견들을 통하여 학자들이 이 이론을 더욱 잘 받아들이게 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게 의도하지도 않았고 일부러 조작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수행된 연구 결과들이 서로 일치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 이론을 지지하는 중요한 증명이 되었습니다』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모든 인간이 육체 속에 이러한 위엄을 간직하게 된 것은 영적인 영혼 덕분입니다…인간 육체가 기존의 생명체로부터 기인했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영혼은 하느님께서 곧바로 창조하신 것입니다…관찰 과학자들은 생명의 복잡한 현상들을 시간의 진행에 맞추어 더욱더 정확하게 기술하고 측정합니다. 영적인 것으로 이행하는 순간은 이런 종류의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형이상학적 지식, 자아의식과 자아성찰, 도덕적 양심, 그리고 심미적.종교적 경험 등은 철학적 분석과 반성의 능력에 속한 것이며, 신학은 창조주의 계획에 따라 그 궁극적인 의미를 밝혀냅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영혼도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서부터 진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이들과 앞으로 좀 더 깊은 대화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과학적인 탐구가 아무리 깊이 진행되더라도 여전히 진화와 창조의 문제는 인간이 어느 쪽으로 보고 싶은가의 결단의 문제로 남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대화가 열을 내며 진행될수록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그 신비가 더욱 돋보일 것이란 사실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