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 상황 속에서 1948년 헌법에 의해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한 우리나라는 아직도 정치적 혼돈이 이어지고 있다.
쿠데타로 헌정질서가 무너지고, 군사정권에 의하여 강압정치가 계속되면서도 민주정치의 기본틀인 국회의원 선거를 비롯한 각종 선거가 실시되어왔다.
정치질서는 공동선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고, 총선은 민주국가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정치를 맡길 일꾼을 뽑는 국가적 행사다. 지난 제16대 총선에서는 시민단체가 낙선운동을 전개하면서 공정선거를 표방했으나 부패구조를 벗어나지 못해 결국 실망스러운 국회상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국가에서 정치는 국민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더 나은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이 힘을 합칠 수 있는 정치공동체를 요구하게 되고(사목헌장 74항), 민주국가에서 정당의 활동이 보장되는 것은 그 이유라 할 수 있다.
공동선은 집단이나 구성원 개개인으로 하여금 더 완전하고 더 용이하게 자기완성을 달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생활상 여러가지 조건들의 총체를 말한다(사목헌장 26항). 그리고 정치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해서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정당화되고 그 의의를 발견하며, 공동선에서 비로소 고유의 권리를 얻게 된다(사목헌장 74항).
그러므로 정당이 공동선을 멀리 하고 당리당략에 의하여 부정이나 비리를 은폐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려 한다면 이는 정치공동체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 할 것이다.
우리는 헌정사에서 공동선에 입각한 정치의 모습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서글픔을 간직하고 있다. 이는 정치권에도 책임이 있으나 주권행사를 하는 국민이 올바른 선거를 하지 못한 데 근본 원인이 있다.
4.15 총선은 앞으로 4년동안 공동선의 실현에 앞장 서 나라살림을 맡아 국민을 섬길 국회의원을 뽑는 행위다. 올바른 선거풍토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다음의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1)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여 사회의 복음화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가 공동선을 실현하지 못하고 파행적으로 나간 데는 신자 정치인들이 복음화의 일꾼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먼저 그 잘못을 참회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청해야 한다.
(2) 교회는 혼탁한 정치질서를 바로 잡고 올바른 선택을 위하여 총선에 참여하는 후보의 선정기준을 제시하고, 모든 정치인 특히 신자정치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사회교리의 중심개념은 공동선이다. 공동선을 기준으로 정당을 평가하고 후보의 됨됨이를 살펴 그 선정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4) 정당의 경우에는 그 정당이 공동선의 실현에 어느 정도 이바지하고 있는가, 후보의 경우에는 사회의 선익에 기여하고 있는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 땅에 공동선을 지향하는 민주정치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권력의 원천인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깨어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요청이다.
마음에 드는 후보나 정당이 없다 해도 차선의 방법을 택하여 투표에 임해 국민의 힘으로 정치질서를 바로 잡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유권자의 현명한 결단이 요구되는 때이고, 올바른 선거에 의하여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와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이 요구되는 때이다.
이글은 3월 8∼9일 열린 주교회의 정평위 임시총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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