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없다. 작년 후반기에는 대통령이 스스로 국민들에게 신임을 묻고 안 되면 물러나겠다고 해서 온 나라가 한바탕 들끓더니, 이제는 현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에서 대통령 탄핵을 추진한다고 핏대를 올리고 있다.
굵직한 정치인들이 줄줄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어리둥절하던 국민들이다. 뉴스에서 보면 몇 억은 푼돈 같이 보인다. 차떼기라는 상상도 잘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돈을 불법으로 주고받는 기업과 정치인들의 검은 거래가 연일 보도되었는데, 서민들 입에서 나오는 것은 욕뿐이다.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증대된다. 과거 독재시대에는 단순하게 정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살았었다. 이제는 과거와 같은 단순한 시각으로는 오늘의 현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번 총선에 임하면서 과연 국민은 정치로 말미암아 희망을 갖고 있는가? 무관심하고 냉소적이다.
잘 사는 소수의 사람들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절대 다수의 서민은 먹고 살기 힘들다. 청년 실업 문제는 심각한데 아무 해결책이 없는 것 같고,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나돌 듯이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불안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를 직업적으로 하는 이들은 기업을 운영해서 번 돈도 아니고 노동을 해서 생긴 돈도 아니면서 수백 억원을 부정으로 주고받고 사용했다니 지켜보는 국민들은 그저 허탈해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오늘 한국의 정치 현실은 국민 스스로가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은 정치적 발전에 있어서도 기적을 일구어 낸 나라이다. 그러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기에 오늘 한국의 정치 현실이 엉망이 된 것이다. 정치를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뭔가 개혁하려고 한단다. 그런데 국민은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팔짱을 낀 채 구경만 하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과연 정치에 대해서 국민들은 무엇을 아는가? 정치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가? 어디에서 정치에 대한 기본 교육을 받았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시민 교육과 정치 훈련은 오늘날 국민들과 특히 청소년들에게 매우 필요하므로, 모든 국민이 정치 공동체 생활에서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그러한 교육을 꾸준히 배려해야 한다」(사목헌장 75). 정치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한, 선거 유세 때 후보들은 큰절을 하고 다니지만 그 순간의 쇼에 지나지 않고 결국 국민을 속이고 속는 행태가 이어지고 만다. 더 이상 정치 발전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실현되고 있음을 믿는다. 그 분께서 짧은 기도를 가르쳐주셨을 때,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도록 했다.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확정적으로 보여준 하느님 나라는 그 분이 치유하고 구마하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 이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느님의 다스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그리워하는 「에덴동산」보다 더 나은 상태가 이 세상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교회가 성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럼 오늘 우리가 절망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 현실에는 하느님의 다스림이 피해 가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한국에서 정치는 세계적으로 괄목하게 발전하였고 세계인이 놀라고 있다. 그동안 천주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을 비롯한 교회의 예언자들이 애썼고 교회 밖에 있던 사람들도 예언자로서 인권과 공동선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가면서 정치적 민주화를 이만큼이나마 가져왔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멈춰 서 있다. 이제 정체한 상태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인가, 후퇴할 것인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것을 누가 결정하는가? 바로 우리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에 대해서 실망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국민이 나서서 권리를 행사해서 변화와 발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인 창조의 완성을 기다리면서 미사와 생활에서 그 분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는 우리는 또한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이 땅의 정치적 발전을 위해서 중단 없이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 현실에 하느님 나라가 임하도록 해서, 발전된 정치 현장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다시 한번 공의회 말씀을 되새겨보자. 「모든 국민은 공동선의 증진을 위하여 자유 투표를 할 권리와 동시에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사목헌장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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