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 장출혈로 실려 온
아산 병원 응급실
천년이라도 살아갈 듯
자신만만 하던 내 육신이
바람 새는 풍선처럼
휘청대며 주저앉는다
또, 그렇게도
당돌하던 내 몸뚱이가
밑빠진 독 물새듯
피의 저장량 절반이
혈변으로 새어 나갔단다
응급실 한 모퉁이에서
애타게 수혈을 기다리는데
일각 여삼추
아내의 피는 얼마를 더하여
말라가고 있었을까
드디어
한 팩
두 팩
링거 줄을 타고
실로 생명의 혈액이
한 방울 한 방울씩
스며 내린다
부족하여
세번 째 팩
네번 째 팩의 피 피 피
천상천하 유아독존
오만 방자…
객기로 살아 온 불충한 내게
귀하고 소중한 목숨이
채워지고 있다
아, 오늘
이렇듯 크고 깊은 자비의 성사!
골고타 언덕 너머
꺼질듯한 내 생의 골짜기를
당신 늑골의 보혈로
채워주시나니…
기왕인데
그 보혈에서 가지고 있는
넉넉하며
가장 아름다운 품성을
척박하게만 살아왔던
내 영육의 핏줄에
새로운 생명의 영양소로
영원히 넘쳐 주기를
두손 모아 기도한다
갓태어난 아가처럼
청정하고 무구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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