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이 다 지나고 생명이 움트는 봄이다. 겨울은 눈을 연상하여 흰색, 봄은 식물들의 푸르름을 연상하여 초록색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산과 들에 식물들이 싹트면서 세상의 색이 바뀌면 겨우내 움추렸던 우리의 마음도 밝게 활짝 펼쳐지는 느낌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 식물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식물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여러 가지 혜택들이 떠오른다. 그중에 쌀과 밀 등의 식량을 제공해 주며,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알려진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하여 깨끗한 공기로 숨을 쉬게 해 주고, 그 밖에 약품의 원료, 음료, 조미료, 건축자재 등 무수히 많은 것들을 제공하고 있음을 느끼며, 결국 식물 없이는 우리가 지구상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꽃들을 보며 마음을 순화시키듯 식물들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변화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많은 것을 제공하는 식물들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필자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식물분류학이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교과목의 특성상 학생들과 함께 들과 산으로 다니며 자연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채집하게 되는데, 채집 전에 반드시 『움직이는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생명임을 인식하고, 우리의 공부를 위하여 희생되는 식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무분별하게 채취하지 말고, 특히 잘못 채집해서 쓸모없다고 아무렇게나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당부를 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의미를 알아듣고 공부를 위해 필요한 식물만을 정성을 다하여 채집하나, 일부 학생들은 잘못 채집된 식물들을 등산로에 아무렇게나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그 식물들을 다시 심게 하곤 한다.
또한 등산로 주위에 누가 버렸는지는 모르지만 꺽은 꽃과 나뭇가지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때마다 문득 『혹시 저 꽃과 나뭇가지가 집에서 소중히 키우던 애완동물이었다면 저렇게 무분별하게 버렸을까?』하는 생각을 떠올려 본다.
식물중 이용성과 경제성이 높아서 사람의 재배 대상이 되는 식물을 작물이라고 하며, 이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야생식물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용성과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서 식물체중 인간에게 필요한 부위, 즉 이용부위(예: 벼 이삭)가 잘 발달한 것만을 골라서 재배하게 되므로, 결국 작물은 식물 본연의 자세에서 보면 기형식물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기형식물인 작물은 생존경쟁에 있어서 야생식물들보다 약하며, 자연상태로 방치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멸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작물이 안전하게 자라 많은 수확을 올리려면 부적합한 환경이나 야생의 동식물 또는 미생물의 피해를 막아주는 조치가 필요하며, 이러한 사람의 보호조치가 결국 재배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자기 몸이 기형화되면서 까지 많은 수량을 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데, 인간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필요 이상의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고, 먹고 남은 것을 아무렇게나 버리는 행위에 대해 작물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 들여 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 땅 위에 낟알을 내는 풀과 씨 있는 온갖 과일 나무를 만드시고(창세기 1, 11∼12), 사람에게 이를 양식으로 주셨으므로(창세기 1, 29∼30),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육신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들을 먹거리로 이용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생명이 있는 풀과 과일나무 등의 식물을 아무렇게나 마구 쓰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먹거리로 제공되는 식물들을 아무 생각 없이 필요 이상 만들고 버리지는 않았는지, 또한 우리의 건강을 위해 찾은 산과 들의 자연에서 꽃이 예쁘다고 꺽은 후 아무렇게 버리지는 않았는지, 자연산 나물이라고 무분별하게 채취하지는 않았는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생명에는 경중이 있을 수 없으며, 식물도 명백히 생명이 있고, 우리와 더불어 이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살아야할 가치가 있다. 많은 생명체들이 새 삶을 준비하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체들의 존재의미를 인식하며, 그 생명체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번쯤 되돌아 보았으면 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