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가족관계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나 홀로」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무 연고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은 없을진대 주인공의 가족 관계가 별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분거 가족, 자발적인 무 자녀 가족, 한 부모 가족, 재혼 가족, 복합 가족, 공동체 가족 등 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개별 가족의 상황이나 가치 지향에 따라 출현하고 있고 그 수도 늘어나고 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핵가족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다양한 가족 형태의 변화는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류 역사를 보면, 가족의 형태에 어떤 정형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다른 모든 사회제도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형태도 경제구조를 비롯한 여타의 사회구조와 그 시대의 가치관과 개인의 지향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가족의 기능에 있어서도 과거에는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 다기능 집단의 성격을 띠었다고 한다면, 오늘날 분화된 사회에서는 가족이 갖던 대부분의 기능이 가족 이외의 전문화된 제도로 이전되어 과거에 비해 축소되었다. 이렇게 가족 기능이 축소되면서 사회의 다른 제도나 기관이 대신할 수 없는 가족의 특화된 기능이 부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개인에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심리적, 사회적 유대를 제공하고, 자녀를 양육하고 사회화시키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강완숙, 「가족의 변화와 전망」, 「품」 24호(2004. 1월호, 7∼10쪽).
오늘날의 가족은 필요에 따라 결합되는 것만이 아닌, 애정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자발적인 유대에 따라 구성된다. 지리적인 근접성이나 혈연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형성된 공동체가 아니라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형성된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개인이 의지할 수 있었던 기존의 혈연공동체와 지역공동체가 해체된 상황에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제 더 이상 어떤 특정한 가족 형태를 「정상」, 「비정상」, 「결손」 가족 등으로 분류하고 차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이젠 가까운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가족 형태의 변화를 보면서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비전을 생각하게 된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르 3,35)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혈연을 넘어서 신앙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하느님의 새 가정 모델을 제시하셨다.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절실한 현대 사회에서 신앙을 중심으로 한 교회 공동체의 사명은 혈연과 지연 등 다른 어떤 유대보다도 강력한 대안 공동체로서의 사명을 갖는 것이 아닐까?
교회가 전통적인 핵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도록 하기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수용하면서 지상의 혈연공동체를 넘어선 「하느님 나라」의 비전으로 모인 하느님의 새 가정 이루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 같다.
우리가 성가정으로 본받고자 하는 예수-마리아-요셉 가족도 따져보면 전통적인 가족 형태는 아니다. 마리아는 예수 아기를 품 안의 내 아이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자녀로 키워내셨고, 요셉 역시 양부(養父)로서 지상 아버지의 역할을 다해내셨다.
올해 한국교회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가정사목의 방향을 현대 사회가 요청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선교방식으로 자리매김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가정교회라는 말도 「가정」이라는 틀을 고수하는 작은 단위의 교회라는 의미라기보다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친밀하고 강한 유대가 갖는 「하느님의 새 가정」이라는 의미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미 실천하고 있는 소공동체 운동이나 가출청소년들을 위한 쉼터, 노인들을 위한 쉼터, 생태공동체 등 여러 형태의 공동체 운동에서 출발하여 기존의 가족 공동체의 의미를 살려낼 수 있는 하느님의 새 가정 운동을 확산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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