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이 끝나고 나서 진보와 보수라는 말이 매일 방송과 신문을 뒤덮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나 혼란스럽다. 무엇을 진보라고 하고 보수라고 하는지 그 기준을 국민이 갖고 있지 않다. 「보수」라고 하면 전통을 통해서 전해지는 좋은 가치를 보존하겠다는 것이다. 「진보」는 역사가 발전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가치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짧은 현대 한국 역사에서 어떤 가치를 보존하겠다는 것이고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진보를 이루겠다는 것인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가치는 세 가지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서 나타난 것은 반공주의로 국가를 지키자는 것, 지역주의, 안정적으로 소유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먼저 「반공주의」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6.25 전쟁 중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무조건 반감을 앞세우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20세기에 지구의 많은 나라들이 시도했던 공산주의 사회는 실패하였다. 그렇다고 지금 온 세상이 신자유주의로 치닫고 있는 것이 옳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지난 세기의 이데올로기 대립은 사라졌다.
물론 국가 안보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더 이상 세계적으로 매우 가난한 나라인 북한만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 아니다.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유럽연합일 수 있다. 그들을 상대로 한국이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해결책을 폭넓고 새롭게 모색해야 하는 시대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상황을 인식하고 국가보안법도 새롭게 정리되어야 하고, 새로운 국가 안보관을 확립해야 한다.
두 번째는 「지역주의」다. 지역주의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 박정희 정권인지. 그러나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남과 북이 갈라지고, 동서가 대립하고 출신 학교에 따라서 분열되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 한국의 전통가치인가? 각 지방, 우리 민족의 고유함을 간직하기 위해서 애써야 한다. 그러나 이제 세계화를 넘어서 「우주 시대」를 향해서 가고 있다. 외계인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런 마당에 고향인 경상도니 전라도니 충청도를 배타적으로 내세워서, 어떻게 인터넷에 의해 세계화로 움직이고 있는 현대 세계에서 버틸 수 있겠는가.
세 번째는 「계층」의 대립이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니 누구나 할 것 없이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가운데 한국의 경제적 발전도 가져왔다. 그러다 보니 사회의 약자에 대해서 눈 돌릴 틈이 없었고 이런 태도를 떳떳하게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제 한국이 총체적으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한번 정리하는 단계를 당연히 거쳐야 한다.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의 가난한 후진국들에도 부자들은 있고 수가 적더라도 중산층이 있다.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안정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그 나라의 평화와 선진국 여부가 결정된다. 사회적 강자와 약자가 더불어 살 줄 모르고 한국이 천박한 자본주의 체제를 벗어버리지 않으면 지금 누리는 경제적 호황도 역사적으로 잠시 일어난 현상에 불과한 사실이 되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함」을 기본 가치로 삼아야 한다. 지난 4월 25일 정부 발표에 의하면 2003년 한해동안 매일 8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었다. 1년 동안 2923명이 죽은 것이다. 경제손실액만 올해 정부 예산 120조원의 10%인 12조4천억원에 이른다. 산재 사망자만이 아니라 한국사회 여러 면에 엄연히 인간생명 경시풍조가 만연해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면서 보수나 진보를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거짓이다.
이제 보수와 진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 국민이 함께 새로운 가치 기준을 분명하게 세워두어야 할 때가 왔다. 무엇이 올바른 가치이기에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서 한국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것인가? 이제는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싶어하는 우리나라가 21세기의 새로운 사회에서 참된 보수와 진보를 올바로 구별하여 서로 존중하고 경쟁하면서 민족과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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