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의 소개로 일을 하나 맡게 되었다. 어느 월간 여성지의 인터뷰 코너를 몇 개월 동안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일을 가능하면 피하려 했다. 무엇보다 인터뷰 당하는 사람을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그 사람에게 질문할 건더기를 찾아야 하고 어떤 때는 약간은 막무가내로, 또 어떤 때는 약간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상대방에게 던져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그 일을 맡게 되었다. 그 가장 큰 동기는 물론 이 일을 소개한 사람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이 일을 하는 수 없이 맡는다는 기분이 들었을 때에는 어쩌면 인연은 참 거추장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절로 출가하는 사람이나 신부님이나 마찬가지지만 속세의 인연을 끊는 것에서부터가 수도의 시작이다. 속세의 짐을 던다는 것은 인연의 거북한 옷들을 벗어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두어 달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참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로 내가 아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다보니 나 역시 내 인연의 끈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 역시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니라 나와의 인연 때문에 나의 인터뷰에 응하여 내 질문에 대답을 해준다. 이러고 보면 인연은 연쇄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보통이다.
그 인연의 파도가 출렁이며 돌고 돌아 다시 내게 온다. 그 때 그 파도를 피할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기로에 선다. 그것을 피하면 인연의 끈은 끊어지거나 적어도 느슨해지고 그것을 맞으면 인연의 끈은 다시금 단단히 조여진다. 너무 단단히 조여지면 갑갑하고 너무 느슨해지면 쓸쓸해진다.
그 중에 결정적인 마주침을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한다. 운명과의 대면은 늘 종교적이다. 알 수 없는 심연의 존재를 그 맞닥뜨림에서 어렴풋이나마 경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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