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에 시달리는 고통 역시 다른 고통들에 비해 결코 작은 고통이 아니고,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다. 심할 경우에는 어느 한 곳에 집중할 수가 없어, 학생들은 학업 성적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어른들은 생업을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하며, 나아가 두통을 겪고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 잡념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어 행복한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아기를 지나고도 잡념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이 올바른 성장의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이다.
어느 한 개인의 생애에서 잡념을 모를 만큼 집중력이 좋은 시기는 유아기이다. 유아들의 의식은 집중되어 있고 현재, 이 순간에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있어서 하루하루는 매우 길고 생동적이며 기억력이 뛰어나다. 이들의 삶은 매 순간이 새롭고 신기하며 온전하다. 어른들도 유아들과 같이 현재 이 순간에 온전히 있을 수만 있다면, 이들과 같이 생생한 삶을 매 순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유아도 어느 시기부터 잡념을 가지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수업도중에 선생님의 말씀에 온통 빠져있던 아이의 머리 속에 딴 생각이 일어 선생님의 말씀을 놓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가정에서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도 머리는 다른 곳에 가 있기 일쑤이기 시작한다. 『얘가 도대체 생각이 어디에 가 있는 거야』라는 핀잔을 듣는 회수가 늘어가고,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고달파지기 시작한다.
동물들은 잡념에 시달리지 않는다. 이들은 언제나 현재, 이 순간에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과거나 미래라는 의식이 없다. 아니 그런 것을 의식할 만큼 성숙해 있지 않다. 현재까지 약 800만년 정도로 알려진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집중력은 오랫동안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뛰어났었다. 학자들은 인간이 잡념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람이 잡념에 시달리는 것은 정신적 성숙함을 누리는 것의 이면이다. 과거와 미래, 현재라는 시간을 인식할 수 있고, 동시에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으며,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단계에 이르러 풍부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의 정신적 활동이 경우에 따라 잡념이 되기도 하고 창조적인 생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생각이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는 중에 일어나면 잡념이 되고, 그렇지 않을 때 일어나면 창조적인 생각이 될 수 있다. 또한 그것을 잘 살려 나가면 뛰어난 영감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잡념들의 대열에 잠겨들 수 있다.
요즘 넘쳐나는 정보들에 의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생각들과 상상들을 하면서 이전보다 풍부해진 물질적 생활 못지 않게 정신적으로도 풍부한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진보를 거듭해 온 인류의 역사에서 큰 축복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을 잘 관리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정신력과 구체적인 현실감각을 함께 키워나가지 않으면, 이들은 통합되지 않고 낱개로 머물러 끊임없는 잡념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의 현실감각을 갉아먹고 심하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으로 몰고 갈 것이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혜택을 많이 누리면 누릴수록 그만큼 더 많은 수련(Askese)이 요청되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도 인생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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