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열리는 새벽
홀연히
귀 막으시고
눈 감으시고
손 놓으시니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이별인가 하나이다.
한 나라의 커다란 매듭을 다듬기 위해
그렇게 심혈을 기울이신 열매가
어떤 것인지 듣지도 보지도 않으시고
한 생애의 점지된 남은 날들을
그렇게 육중한 침묵으로
보듬고 계시더니만 그것마저 기진 하셨나이까?
커다란 사건의 변론을 맡으실 때
늘 평범한 질문으로 그 사건의 상황을
여러 각도로 비추어 생각하시는 자상함
칼날 같은 직관력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는 그 고귀함으로 인해
인권변호사라는 명제가 있었나이다.
법조인이라는 제도에서 벗어나
이제는 바깥세상을 보고 싶으시다고
그래서
「남은 날을 조용히 섬기고 싶다」고 하신 것이
이런 것이옵니까?
이웃사람 네 명이 환자를 들것에 메고
예수님이 머무시는 집 지붕을
뚫고 환자를 내려보내 치유를 받았듯이
주위 사람들의 정성을 보시고 치유해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훔치고 싶었는데
우리의 정성이 부족하였나이까?
우울한 터널 저 끝에 무엇을 지향하며
날(日)이라는 디딤돌을 딛고 건너온 이 자리
시계바늘 돌릴 수 있듯 그 날을 돌리고 싶은 바람이라면
이것마저 욕심이라고 나무라시겠나이까?
티밥처럼 하얀 탱자꽃 위로 넘나는 바람벽인 듯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버팀목으로
늘 함께 흐르려고 하셨던 법조인의 발걸음
그 발걸음을 계속하실 줄 믿었나이다
그래서 멈추었던 시간을 움켜잡고
아름드리 감사하는 날을 기다렸나이다.
허나
도요새가 습진 강변을 자유로이 찾아가듯
당신의 귀향은 그렇게 준비되어 있었나이다.
문 한 짝 열면
생전의 모습을 뵐 수 있었는데
이음고리 끊어진 영혼의
망설임이 이처럼 큰 상처로 남았나이다.
언젠가
함께 환자방문을 하셨을 때
기도를 망설이는 제게
『수녀기도는 하느님이 더 잘 들으실꺼야』라며 재촉하시니
저 이제 큰 소리로 기도하겠나이다.
망자 유현석(요한)에게 길이 편안함을 주소서
하느님의 자비가 유현석(요한)에게 비추어지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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