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평소와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산 언덕을 내려오면 사거리가 나오고 버스 정류장이 있다. 이 사거리의 신호등은 늘 빨간등만 깜박거리지만 별탈없이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는데 그날은 주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방으로 차들이 밀려있었다. 주변 산에 공동묘지가 있어서 주일에도 가끔 차가 밀리긴 하지만 그날은 사거리 가운데서 차들이 엉켜있는 채 서로가 양보를 하지 않은 탓 같았다.
사거리의 정체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5분, 10분… 자꾸 시간만 갔다. 20분이나 지나서야 겨우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평화화랑 개관시간은 오전 10시다. 단 한분의 관람자라도 헛걸음하게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주일에는 9시 미사가 끝난 후 꼭 들르시는 분이 있다. 만 3년째 꼭 그 시간에 오는 분이기에 더욱 마음이 조급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전철역까지 뛰었고 전철에서 내려 화랑까지 또 뛰었다. 화랑문을 열고나니 10시였다. 잠시 후 그 관람자분이 어김없이 들어섰다.
『오늘은 중학교 다니는 제 딸아이 방에 걸어놓을 종교교육이 될 만한 그림 한점을 사려고 합니다.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젊은 나이답지 않게 조용하고 기품있는 인상처럼 자녀의 교육에서도 품위가 엿보였다.
어려서부터 다져진 신앙의 중요성을 잘 알면서도 입시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이 시대에 종교서적, 음악, 그림으로 종교교육에 마음쓰는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이 숭고한 교육에 평화화랑이 한몫을 하고있다는 보람에 채신은 없었지만 시간에 맞추느라 뛰어오기를 잘했다고 미소하면서 화랑과 관람객들과의 무언의 약속들을 위하여 새삼스레 또한번 최선을 다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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