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실에서 그림을 가르치던 시절, 잊혀지지 않는 남자아이가 있다.
눈은 커다랗게 늘 겁먹은 듯이 깜빡이고, 얼굴에 표정이 없던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 보다 항상 일찍 와서 화실 층계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말이 없고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언제나 침울한 그 아이에게 나의 관심이 커져 가던 중, 충격을 준 것은 바로 아이의 그림이었다. 그 아이는 검정 색 크레파스만 사용했다. 넓은 스케치북은 지저분하게 얼룩졌고 아빠, 엄마의 얼굴은 아주 작고 못나게 그려 넣었다. 다른 색의 크레파스는 손을 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그림을 보는 순간 가슴에 의구심이 솟기 시작했다. 「웬일일까?」 난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무렵 아이의 부모가 매일 싸움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야 그 아이의 그림을 이해했다. 그 후 지도할 때 밝은 색을 쓰도록 권유했다. 더 중요한 것은 침울한 그 아이의 마음을 밝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림을 통한 지도를 계속한 얼마 후 점차 말문을 열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마음은 점 하나 없는 백지와 같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누가 어둡게 만들었을까? 천사와 같은 마음에 누가 상처를 입히는 걸까? 어른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고 순수함을 배워야 하는데 오히려 검게 물들여 놓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기도할 때는 『어린아이처럼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오로지 하느님 사랑으로 대해 주어야 한다. 끝없이 감싸주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기분 내키는 대로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도 가끔 그 때 그 아이가 생각나면 파란 하늘을 본다. 사랑은 하늘색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