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텔레비전에서 밤늦게 국회의원들과 시민단체 대표, 교수 등 사회 지도자급 인사들이 정치 현안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어느 편의 주장이 맞느냐를 떠나서 그들의 말은 그야말로 거의 싸움 수준이었다. 상대방의 말에는 귀를 막은 채 일방적으로 자기말만 해댔다. 때로는 듣기에도 역겨운 욕설에 가까운 인신공격으로 막말을 쏟아냈다. 오히려 텔레비전을 보고있는 시청자들이 수치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외치는 대화와 상생은 온데 간데 없었다. 그들은 아예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정치 지도자들의 말은 일반사람들의 말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지도자들의 말이 일반 국민들에게 주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자의 말에는 책임감이 뒤따른다. 그래서 말 한마디의 실수로 자리를 물러나는 경우도 많다. 많은 사람들은 정치에 염증을 느낀다고 거리낌없이 이야기한다. 이 말은 정치 지도자들의 말에 실망을 느끼고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적어도 정치 지도자들의 말은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지도자들의 말이 국민들에게 고통과 좌절을 안겨주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말에 대한 책임이 어디 정치하는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인가. 누구를 막론하고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잣대가 된다. 가정이나 직장, 혹은 친구를 만날때도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되는 것이 바로 한마디 말이다.
요즘 버스나 지하철에서 어린 학생들이 쓰는 말을 들어보면 너무 거칠고 욕설이 많다. 누구나 말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한다. 말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결코 공허한 것이 아니다.
말은 보이지 않는 형체를 지니고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때로는 툭 내뱉은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여태까지의 인간관계를 단번에 끊어버린다.
또한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에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또한 말 한마디가 어두운 마음에 한줄기 밝은 빛과 같은 희망을 주고 세상을 살맛나게 해주기도 한다.
얼마전 대검에서 피의자에게 반말을 할땐 징계를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작은 개혁이지만 대검은 최근 검사나 수사관이 피의자에게 반말하는 경우 두 번째로 적발됐을 때는 징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인권적인 차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말이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말 한마디 때문에 천냥 빚을 지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많은 말을 한다.
어떤 이는 말하는 것을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에 비유한다. 좋은 말, 사랑스러운 말의 씨앗을 뿌린 사람은 항상 좋은 열매를 맺지만 험담과 악담의 씨앗을 뿌린 이는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되고 고통의 열매를 따야 한다. 항상 실수가 없도록 혀를 잘 다스려야 한다는 사도 야고보의 말씀이 새삼스럽고 중요하게 느껴진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몸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입니다』(야고 3, 2).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매일같이 『오늘은 험담이나 비난은 절대하지 않고 칭찬과 위로의 말만 해야지』라고 스스로 다짐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느 피정센터의 복도에 걸려있는 「말 한마디」라는 제목의 시를 본적이 있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합니다. /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 은혜스런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 /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 주고 /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줍니다』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무척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 어느 경우에는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말이 있고 박해를 각오하더라도 꼭 해야 되는 말도 있다.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할 때를 구분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인생의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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