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지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던 날 나는 울산의 한 특별강연에서 「한일 과거사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한국과 일본의 기층문화를 비교하고, 이어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은 무엇인가를 놓고 일본의 자세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온 후 전해지는 뉴스는 아연실색할 만한 것이었다. 한국의 대통령이 「내 임기 중에는 한.일 과거사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수상이 한국에 대해 『내 임기 중에는 과거사를 이야기하지 말아 주시오』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그랬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망발인가 싶었다.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일본 정치인들의 한국에 대한 망언이 이 같을까 싶었다. 일제 강점하에 있었던 친일반민족행위와 강제동원에 관한 피해 진상을 특별법으로 규명하자는 나라의 대통령이 바로 그 당사국이자 가해자인 일본을 문제 삼지 않겠다니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게다가 실수라고는 하지만 「다케시마(竹島)」는 또 뭔가.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기자가 「다케시마 문제 등에 대해 여쭤보고 싶다」고 질문하자 이 나라의 대통령이 『다케시마 문제에 관해서…』라고 말을 받은 것이다. 「다케시마」는 일본인들이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우리의 「독도」다. 적어도 『당신이 지금 다케시마라고 말한 섬 독도문제는』정도로 받아넘기는 지도자다운 금도(襟度)와 용의주도함을 우리는 원하는 것이다. 그가 우리의 대통령이기에.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양국의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발언처럼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에 대한 모독행위도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한일간 과거사 문제는 아주 오래전의 일로, 이제는 과거사 그 자체의 문제보다 과거사의 해결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로 입장표명을 하고 있다.
우리가 문제삼는 것은 임진왜란도 왜구의 약탈도 아니다. 바로 그 피해자들이 아직도 생존해있는 살아있는 역사다. 그런데 무엇이 그다지도 「아주 오래 전의 일」인가. 계속되는 그리고 그렇게 예상되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 주요 정치인들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소위 시혜론(施惠論)을 비롯한 한국 비하 발언에 우리가 먼저 나서서 면죄부를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대통령 발언은 『20세기 한·일 관계를 마무리하고,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공동의 목표로 구축하고 발전시키자』는 1998년 「한.일 파트너쉽」 공동선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에게 묻고 싶다. 98년 한·일 파트너쉽 공동선언 이후 한 일 과거사가 어떻게 정리되었다는 것인가.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주요 정치인들의 끊임없는 망언과 교과서 왜곡 따위가 전부였다. 일본 총리의 당당한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공동파트너쉽인가.
일본군 「위안부」문제 하나만 보자. UN인권위에서까지 이 문제가 확대되자 일본은 일명 「국민기금」이라는 정체불명의 돈을 만들어서 「위안부」 할머니들 사이를 갈기갈기 분열시키고, 이어서 할머니와 지원단체를 분열시켜 힘의 결집을 막고자 했다. 그러면서 끝까지 그것이 국가의 범죄라는 것을 은폐하기에 급급했을 뿐이다. 이것이 공동파트너십인가. 인접국과 불행한 역사를 수없이 붙안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대사다. 관계국가의 잘못된 역사인식에 대하여 그 잘못을 분명히 하고 우리의 주장을 확고하게 하면서 안으로는 국론을 통합하여 대외적인 힘을 결집하는 지혜로움이 왜 우리 당국자에게는 없는가.
임기 안에 과거사를 말하지 않겠다면, 말하지 않으면 된다. 말하겠다 안 하겠다는 그것부터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공개적으로 한 약속은 바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약속이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일본의 과거사를 이대로 묻어둘 수는 없다는 국민이 나 하나만이 아니다. 도대체 어느 나라의 국가원수인가. 이래서는 안된다. 정말로 이래서는 안된다. 저 민족의 원혼들, 강제로 끌려가 그 시신조차 돌아오지 못한 채 오늘도 일본의 사찰 습기 찬 지하에서 거미줄에 엉키고 있는 뼈 항아리가 얼마인지 아는가. 이래서는 후손으로서의 「할 짓」도 「갈 길」도 아니다. 통분(痛憤). 더 무슨 말을 하랴. 이런 민족이니 그 짓을 당했던가…. 참담할 뿐이다.
반미라면 그토록 촛불을 들고 나서던 젊은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도대체 왜 우리의 젊은이들은 일본의 과거에 대해 이토록 관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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