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밤에 일하는 것이 좋다. 일상이 워낙 맹렬해서일까, 밤 시간의 고요함과 평화는 교열작업을 한다든가, 기획안을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말하자면, 저녁형 인간인 나에게 아침은 너무나 두렵다.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침대와 별로 내키지 않는 싸움을 하다보니 아침이 늘 피곤하다.
그런데 아주 우연히 그 고약한 늦잠 버릇이 고쳐졌다. 집이란 본디 남향인줄 알고 수십 년(?)을 살던 내가 동향집으로 이사 오고 며칠 되지 않은 날, 기적처럼 새벽과 아침이 엇갈리는 시간에 눈이 뜨였다. 거실이 온통 주홍빛이었다. 해가 솟아오르면서 거실에 걸린 그림이며, 탁자와 걸상, 심지어 내 실내화까지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모름지기 빛이 해야 할 본분은 세상을 비추는 일이라 했던가. 그 빛이 내 눈에 닿아 나의 덜 깬 잠을 몽땅 빼앗아 가버리는 것이었다. 마치 개안(開眼)의 순간처럼 조심스럽게 눈을 뜨고, 나는 그 소박한 경이로움에 빠져 있었다.
아침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새로웠던 적은 없었다. 주홍빛 햇살 속에서 큰 숨을 들이쉬었다.
기분 좋은 공기를 한껏 폐에 불어 넣어주던 그 행복한 아침 이후 나는 매일같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베란다를 어슬렁거렸다. 얼마간은 못다 잔 잠이 그리웠지만 그래도 나만의 호사를 누리며 여유롭게 아침을 준비하고, 「사계」(四季)를 듣고, 간밤에 보다만 책도 뒤적이면서 아침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오늘도 저에게 역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공평한 「새날」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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