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날 어머니 눈이 책과 점점 멀어진다는 걸 발견했다. 그러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어머니 눈에 얹혀져 있던 돋보기가 새삼스럽게 와 닿았다. 하루는 책을 보시던 어머니께서 의외의 부탁을 해 오셨다. 읽고 계시던 책의 차례 중 한 부분을 짚어주시면서 본문 내용을 크게 확대해서 볼 수 없겠느냐는 주문이셨다. 아닌 게 아니라 글씨가 깨알 같았다. 확대복사를 해다 드릴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 방법은 아주 단발적인 처방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컴퓨터에 앉아 큼지막한 글씨로 뽑아 드렸다.
2. 몇 해 전 어느 신부님께서 어르신 신부님들이 보시기에 편리한 큰 글씨의 미사전례책을 몇 권 제작하고 싶다고 찾아오셨다. 미사 중에 눈이 흐려져 곤혹스러워하실 어르신 신부님들을 위한 배려였던 것 같다. 완성된 책을 찾아가신 뒤로 여쭈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요긴하게 쓰였을 듯싶다.
3. 내 명함은 두 종류이다. 작은 글씨를 보기가 힘들어 명함을 앞으로 당겼다 뒤로 밀었다 안경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분들에게 죄송해서 한 가지, 그리고 원체 작은 글씨와 휑덩거리한 여백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어쩔 수 없어서 한 가지, 그래서 내 명함은 두 가지이다.
4. 우리가 접하는 책들은 동화책을 포함한 의도된 몇몇 종류의 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글씨가 작다. 작은 글씨는 분명 짜임새가 있다. 게다가 좁은 자간은 앞 단어와 다음 단어를 이어주는 연결감이 있어 가독성을 높여준다. 그러나 눈이 조금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붙어있는 글자들이 평화로운 독서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중 대부분의 서점에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 1층 서가를 빼곡히 메우고 있다. 돋보기 아래 간간이 찌푸려지시는 어머니의 눈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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