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이상 보존된 물건을 엔티크라 하고, 그에는 못 미치지만 비교적 오래된 물건을 빈티지라 하고, 한 세대 정도 전의 물건을 네오 엔티크라고 정의한다면, 내게는 네오 엔티크가 제법 있다. 무엇이든 잘 버리지 않는 부모님께서는 처리가 애매해진 물건들이 생기면 네가 임자다 하시며 나에게 주곤 하신다.
이미 클래식 카메라 반열에 오른 지 오래된 아버지의 캐논 수동 카메라, 어머니께서 시집 올 때 가져오셔서 우리 4남매 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일제 자노메 미싱, 청실 홍실 둥근 타래실로 옭아 묶은 어머니의 비단 주머니, 배터리로 작동하는 텔레비전,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산 주산, 60년 쯤 된 미제 나침반과 저울, 전봇대에서 뜯은 영화 포스터, 그 시대의 아이콘이 한 눈에 보여 지는 편지지와 메모지들, 전동 타자기….
골동품이라고 하기엔 값도 없고 고물이라고 하기에도 어중간해서 보관이 어려운 물건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귀하고 요긴하게 쓰였을 옛 물건들이 이제는 본래의 기능보다는 존재 이유만으로도 다시 내 삶을 풍요롭게 하면서 내 보물창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가끔 보물창고를 열고 들어가 눈을 감고 시간여행을 즐긴다.
추억이 살아 숨쉬고 시간이 숨쉬는 창고 안에서, 바람이 몹시 불던 초등학교 입학식 날 짙은 회색 모직 코트를 입고 사진을 찍어주시던 아버지를 만나고, 들국화 같은 어머니를 만나고, 주산으로 장난치던 작은 언니를 만나고, 호기심 반 만용 반으로 친구들 앞에서 영화 포스터를 뜯어내던 나를 만난다.
생각해보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 세월이 묻어있는 것들과의 조우를 경험해 보지 않고 그 느낌을 알 수 있을까? 새 것, 새로워지는 것에 이력이 나는 날, 나는 작은 보물창고 문을 연다. 지나간 시간과 긴 호흡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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