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국체전의 테마는 아름답다. 「생명, 그 중심에서 하나로」(In Biotopia, All For One)가 그것이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무르익는 전국체전. 제85회 전국체육대회가 청주에서 열렸다. 해마다 있는 것이기에 전국체전은 말 그대로 연례행사다. 그러나 참가한 선수나 임원은 물론 그것을 치러내는 개최지 충북으로서는 결코 한번 치러내고 나면 끝나는 연례행사일 리가 없다.
스포츠에 관한 한 한국은 세계적인 국가다. 올림픽 순위나 월드컵에서의 성과만이 아니다. 세계가 우리를 그렇게 안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지만,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꽤 여러 번 『스포츠 선수이십니까?』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가 그때 「아디다스」나 「나이키」 상표가 붙은 트레이닝 따위를 입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어깨가 딱 벌어진 준수한 체격을 가진 것도 아닌데 그렇다. 술 담배로 찌들대로 찌든 167cm의 작달막한 소설가에게 왜 『스포츠맨이십니까?』하고 묻는단 말인가. 그때마다, 한국이라면 6?25를 떠올리던 세계인들이 이제는 「한국은 스포츠 강국」 쯤으로 인식하게 되었나 보다 하면서 씁쓸해 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안내해서 왕릉에 갈 때가 있다. 그때마다 느끼는 일인데, 그중에는 더러 왕릉의 문화적 가치나 왕의 치적과는 거리가 먼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나무다. 왕릉안에 심어진 나무들을 보면서 저건 얼마 짜리 나무라고 값을 매기는가 하면 『저 주목은 억대 짜리야, 1억은 나가겠어!』하는 사람이 있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 기간에도 그런 「특별한 관심」을 보았다. 중계방송으로 전해지는 선수들의 선전을 보면서, 경기의 흐름이나 선수의 분투를 떠나서 『이제 저 선수는 얼마 벌었다』 『한 달에 얼마씩 받게 되었다』면서 선수들이 받을 돈을 계산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스포츠 선수의 국가적 기여나 사회적 성취를 돈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관심」에는 가장 중요한 스포츠 정신, 그 혼을 불태운 열정이 빠져 있는 것이다.
지난 올림픽을 지켜보면서 나는 다른 의미의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선수들도 이제는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한때 나에게는 올림픽 메달리스트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다. 일단 가난해야 한다. 홀어머니가 어려운 생활을 해나가거나, 병든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병에 걸리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어두운 시절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좌절을 이겨내고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우뚝 선 영광의 얼굴…. 선수는 줄줄 시상대에서 눈물을 흘리며 가난에 겨웠던 어머니에게 메달을 바치고, 동네에서는 난장판 같은 잔치가 열리고,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선수에게 성금이 답지한다. 이름없는 이들로부터의 아름다운 성금도 있지만, 빼놓지 않고 얼굴을 내미는 그렇고 그런 기업의 생색내기 돈도 눈에 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는 나의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다른 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선수 대부분의 가정생활이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들은 밝고 당당했고, 메달이 가져다준 영광이 오랜 각고와 수련의 결과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시상대 위에서 환하게 웃는 선수, 그들은 이 영광을 마음껏 즐거워하고 있었다. 턱없이 비장해 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입에 올리는 선수도 줄어들었다. 그건 오히려 중계 아나운서들의 행태에만 남아 있구나 하는 인상이었다. 국민 여러분이 지켜보고 있으니 최선을 다해 달라는 격려 아닌 격려를 아나운서들만 잘도 해댔다.
메달리스트가 되어 나라를 빛내는 것만이 선수생활의 꽃은 아니다.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삶을 연마하고, 그 정신을 인간적 성숙과 긍지로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스포츠를 통한 자기 완성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완성인가.
이번 체전을 통해서도 『우승의 영광을 고향에 돌리겠습니다』하며 비장해 하기보다는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는 선수가 많았으면 한다.
체전은 스포츠를 통한 국민화합의 자리이다. 그렇게 해서 대회를 치르는 충북도민의 역량과 결집력이 빛나는 체전으로 막을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생명, 그 중심에서 하나로」라는 테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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