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폐지 등 주요국가 현안문제를 놓고 벌이는 논쟁과 갈등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당파적 이해관계와 보-혁 구도, 세대간의 입장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온-오프(on-off)를 넘나들면서 벌이는 성명전과 대규모 집회 등으로 우리 사회가 소모적 국론분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기에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특히 개신교의 보수교단과 진보세력간의 갈등과 대립 또한 치열하다. 가톨릭의 경우 외형적으로는 이 소용돌이의 와중에서 비켜서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보안법폐지 반대를 위한 국가원로들의 시국선언이 있고 나서 원로(?)논쟁이 붙은 가운데 수도권의 모 일간지 등의 시사만화에 김수환 추기경의 얼굴이 이용되는가 하면, 한겨레신문의 「호인수 신부, 보안법 필요성 주장한 김수환 추기경 비판」등의 기사와 같이 추기경에 대한 교계 내외의 반응이 엇갈리는 가운데 일부 비판적 여론이 제기된 바 있다.
추기경은 누가 뭐래도 가톨릭은 물론이요 한국사회의 존경받는, 몇 안되는 원로 가운데 한 분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신부는 『성직자라면 북한이 남침야욕을 버리지 않았다느니 하는 견강부회식 정치적인 요인들을 앞세울게 아니라 성경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해야』한다고 언급하면서 추기경께서 보안법폐지 등 문제에 대하여 『정치적 입장에서 말하고 있다』는 비판적 견해를 보며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필자가 보안법폐지 등 특정 사안과 관련된 사제의 견해와 입장을 소재로 삼은 것은 이에 대한 찬-반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평소 종교적 구원의 대상인 인간의 삶과 종교와 정치와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풀 가톨릭적 해답의 실마리를 얻고자 함이다.
먼저 이와 관련하여 「근?현대 한국가톨릭 연구단」이 한국 근?현대사와 가톨릭 교회의 상호관계를 신학과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한 「근?현대 사회문화 변동과 가톨릭교회」라는 주제의 학술심포지엄(3월 27일)에서 발표된 내용을 통하여 종교와 국가 그리고 정치이데올로기관계에 대한 예단을 열고자 한다.
천주교가 조선에 전래된 이래 조선시대와 일제하의 오랜 탄압 속에 무수한 순교자를 배출하는 가운데 생존하여 왔다.
한편 일제강점기 교회 지도자들은 새로운 박해의 두려움속에 교회의 안녕과 보호를 도모하는 가운데 부지불식간에 정?교 분리의 원칙을 선교방침으로 하는 국가관을 형성하였다. 해방이후 남북분단, 미군정기, 한국전쟁, 군사쿠데타와 유신독제, 5.18 등 격변하는 한국정치 사회 환경속에서 그때 그때 정치주체의 종교정책 또한 정부(정치)와 종교간의 관계를 결정짓는 주요변수로 작용하였다.
교회는 현실과 동 떨어진 진공속에 존재하지 않으며, 한국가톨릭은 민족의 역사안에서 존재하는 사회적 역사적 주체이면서 객체로서 격변의 현대사를 함께 해왔다.
그러나 수많은 진통과 역경속에서 성숙해온 시민사회는 1987년 6월 항쟁을 정점으로 정치적으로는 국가의 일방적인 지배를 강요하는 권위주의 정권을 해체시켰으며, 경제적으로는 성장위주의 재벌중심 산업화를 견제했으며, 사회적으로는 민주화담론을 통해 정부주도의 통일론을 무력화 시키는 등 사회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의 종교계, 특히 가톨릭은 일제 강점기 이래의 정?교분리주의가 그 촉매적 역할을 하는 가운데 국가(정치)와 종교의 이데올로기적 유착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가톨릭의 고위성직자 및 중진사제들 사이에서 느끼는 보수주의적 태도는 성속 이원론적 신학?신앙관 속에서 교회와 정치의 분리를 강조하고 교회의 정치적 개입을 반대하는 경향을 띠어왔다.
이러한 논의의 본지는 교회가 하나의 정치사회적 압력단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하여 교회 자신이 헌신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국가와 사회를 하느님 나라에 다가서는 올바른 정치적.사회적 질서로 이끄는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교회가 스스로를 불태우는 촛불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본 뜻이 있다.
새만금지구의 갯벌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방조제공사의 중단을 촉구하며 목숨을 걸고 삼보일배를 강행한 문규현 신부가 부안 핵 폐기장 백지화를 촉구하는 주민들과 행동을 같이 하는 가운데 경찰이 사정없이 내려치는 방패에 맞는 모습속에서 사제로서 정의구현을 위하여 스스로를 불태우는 촛불이자 이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하여 헌신하는 수난받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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