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과 송은 캠퍼스 커플로서, 더더구나 송은 여고동창으로서 저와는 말 그대로 막역한 친구 부부입니다.
둘은 숟가락 하나 변변히 없이 결혼해서, 그 옛날 송이 굴욕적인 느낌까지 애써 이겨가며 통신공사 6급으로 출발한 직장생활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집 마련하고 적금 들고 차 사고, 그렇게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굴욕적이라 함은 군사정권 시절, 「공무원」에 대한 막연한 비하감이 있던 청춘 나이에 일찍이 평탄하고도 무사안일한 준공무원 생활을 위해 시험공부를 해야만 했던 「생활」의 강요에 대한 단상이지요.
여하튼 둘은 차곡차곡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박이 그 잘나간다는 모 방송국 영상사업단의 다큐사업팀 직함을 박차고 나와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마누라에게 공포 했고, 얼마 후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박이 「386의 리더로서 잊혀진 로봇태권브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기사가 날 때부터 어두운 예감이 들더니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집 넘어가고 사무실 날아가고.
최종 부도나던 날 저녁, 텅 빈 사무실 키를 돌리고 차를 몰아 한강을 지나던 박은 생각했다는군요. 죽음이라는 것이 참 간단할 수도 있구나, 그냥 이대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 텐데…이대로 한강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착잡한 심경으로 아파트 공원에 도착해서 전화를 거는 박. 소주 한 병 들고, 공원 벤치에서 마누라 기다리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합니다. 멀리, 걸어오는 마누라.
소주병의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고, 박은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 망했다』
박의 손에 들린 빈 소주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이 딱 두 마디 하더랍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했다. 빚이 얼마인가?』
그리고 둘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어렵게, 그러나, 더 깊어진 인간에 대한 신뢰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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