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과 1994년 합의했던 제네바합의를 지키지 않아 빚어진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채,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매우 심각한 조짐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고 한반도주변에 핵잠수함을 증강배치하고 미사일방어체제를 구축하는 등 일촉즉발의 초긴장상태로 치닫고 있다. 미 구축함의 동해순찰 목적을 「불량국가」 감시라고 밝히고 있어 누구라도 북한을 겨냥하는 줄 안다.
삼엄하게 포위하고 대화를 하자는 것은 분명 협박이지 정상적인 대화로 볼 수는 없다. 미국은 제네바합의 제3조에서 북한에 대해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사용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공식적으로 제공한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러나 2002년 9월 20일 부시 정부는 북한에 대해 「악의 축」, 「불량국가」라 하며 선제공격 운운하고 적대정책을 노골화함으로써 제네바합의 이후 잊혀져 가던 선제공격에 대한 북한의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켰다.
미국의 아프간, 이라크 침공은 보위수단 내지 핵 억지력으로서 북한 내 핵프로그램 옹호론자들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켰을 것이다. 핵확산방지조약(NPT)에는 핵보유국이 비핵보유국에게 핵선제공격이나 위협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있고, 그럴 경우 비핵보유국은 핵확산방지조약을 탈퇴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전쟁 후 한반도의 군사적 위험을 관리하는 유일한 장치는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이다. 지난 50여년 동안 불안정하게 유지된 정전협정아래서 한반도는, 언제나 소모적인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 이로 인한 국력의 소진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으며 주변 강대국들 이해관계의 각축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한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은 대북관계 개선이나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에 큰 장애물이 되어 왔었다. 남한은 실질적으로 한반도 군사대치에서 중요한 일방이면서도 법적으로 온당히 당사자 지위를 주장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실제 북한은, 정전협정 조인당사자가 남한이 아니고 미국이며 작전 지휘권도 미국이 갖고 있으므로 정전협정에 대체할 평화협정이나 조약에 서명할 북한의 상대는 원칙적으로 미국이라고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은 북미 양국만의 평화협정을 일관되게 고수해온 종래의 입장을 바꿔 남북한 및 미국간의 3자 평화조약을 추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 변화와 6자회담으로 조성된 정세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켜 신동북아질서를 여는 절호의 기회이다.
특히 평화조약을 통해 한반도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만사를 푸는 핵심고리가 되고 있다. 지금의 정세는 평화조약을 위한 우리 정부의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진정한 민족공조라면 평화조약에 대한 남북한간 조율이 가능할 것이며, 진정한 한미동맹이라면 미국도 동맹국인 남한이 요구하는 평화조약 체결 등 대북정책의 조절이 필요하다. 평화조약 이후에도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 유지?운용될 것이고, 다만 지위와 역할이 변화될 것임을 설득해내야 한다. 미국과 동북아가 공동 승리하는 길은 평화조약을 통해 시급히 한반도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 길만이 미국의 동북아전략, 중국의 대중화주의, 일본의 군사팽창주의, 러시아의 재기 속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자주적인 민족공조도, 자주적인 한미동맹도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작금의 남북관계 또한 경제협력, 사회문화교류, 인도적 지원 등이 진전해도 반북대결의식을 청산하지 못하고 북을 적대시하는 정책과 법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이념과 체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뛰어넘어 민족대단결을 이룰 수 없으며, 6?15통일시대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평화조약 추진을 위한 우리나라의 노력은 핵협상도 진전시킬 것이며 남북정상회담, 군축회담의 장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어야 대대적인 군축이 이뤄지고, 그래야 북의 경제건설과 남의 복지확대도 가능하고 통일비용을 절감하여 동북아의 새 하늘, 새 땅으로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여기 하느님의 명령이요 주님의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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