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다 아픈 지인(知人) 한 분을 시골의 한 피정집에 모셔다드리고 왔습니다. 불안에 떠는 그 영혼이 무작위로 쏟아내는 말들은 조금은 소란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야기에 지쳐 그만 차창 밖의 가을 풍경에로 시선을 돌립니다.
먼 산에 옅은 붉은 빛을 보면서 지난 가을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백운동 계곡에 갔던 얘기, 나락에 알이 차고 웃익어 가는 금물결 논을 보면서, 감은사지를 향해 달리는 좁은 논둑 차로의 특별한 정회를 이야기합니다.
현재에 살지 않고, 끊임없이 좋았던 옛날을 회상하는 그이는 그래서 아픕니다. 아니, 아파서 그리 합니다. 잘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지 않고, 역부러 굽이굽이 산길을 골라 천천히 시골마을들을 순례하며 가는 길, 아픈 그를 위한 배려입니다.
시골마을이 풍기는 정감, 낡고 추레한 간판이 걸린 구멍가게, 집집마다 몇 그루씩 빨갛게 익어가는 감나무, 좁은 아스팔트 도로변에 멍석 깔고 말리는 나락과 고추 등속, 아무 급할 것 없이 느지막이 길을 나서는 노인네들의 뒷모습….
문득, 시골집의 눅눅한 아랫목에 드러누워 낮잠이라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늙고 기운 없는 외할머니가 제대로 씻지도 않고 설렁설렁 만들어주는 호박전을 먹으며, 잔솔가지 불쏘시개로 구들을 덥히는 시골 방에서, 할머니 체취가 밴 묵은 이불을 덮고 혼미하게 잠들었다가, 엄마, 하고 불러도 아무 인기척 없는 빈 방에서 깨어 혼자 울던 어린 날의 기억이 살아납니다.
멋진 인테리어도, 여타의 편의시설도, 변변한 화장실도 없는, 묵은 시골집이 주는 위로가 새삼스러운 가을입니다. 삶이 익어가나 봅니다.
그렇게 어느덧 삶이라는 문제가 하나씩 풀릴 때, 「하느님…」하고 가만히 그 이름을 불러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분, 아픈 나를 위해 굽이굽이 시골길을 천천히 몰고 오신 자애로운 운전자는 그만으로도 행복해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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