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한 잡지에 성직자들의 보수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천주교 사제들의 보수가 가장 적어서 청빈하게 비쳐졌다. 그런데 거기엔 미사예물이 빠져있었다. 비공식적인 수입이라는 것이다.
미사예물의 역사적인 배경은 미사 중 봉헌예물이 그 시작이었을 것이다. 백성들은 미사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 외에 다른 예물도 가져왔고 그것은 교회운영과 사제생활비 그리고 가난한 이를 구제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제 교회는 이 전통을 새롭게 받아들여 미사예물에서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 교회운영, 사제생활비와 활동비가 나름대로 책정되어있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기쁘게 미사에 참례하고 원한다면 누구나 미사지향을 청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미사예물은 처음의 전통과는 달리 사례금의 성격이 강하다. 어떤 지향으로 기도하고 싶은 교우가 미사중에 기억해달라고 사제에게 청하는 일종의 계약형식이다. 현재 한국교회 많은 교구가 미사예물공유화를 도입하고 있다. 모든 미사예물을 교구이름으로 거둬들여 일정액을 급여개념으로 사제들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일견 공평해 보이지만 획일적이고 전제주의 냄새가 난다. 차라리 하루에 한 미사의 예물만 집전사제 몫으로 하고 그 외는 교구에 보내 가난한 지역 사제에게 도움이 되도록 한 이전 방식이 더 합리적이고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다.
지침을 준수하도록 권고하면서 사제의 양식을 믿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제는 기업의 직원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진리 안에 자유롭게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다. 사제가 자기신원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직무에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하여튼 미사예물은 처음부터 많은 부작용과 오해를 불러일으켜 왔다. 어느 교구에서는 거둬들인 미사예물 사용처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미사예물을 통해서 사제들이 부당하게 주머니를 부풀린다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미사예물의 양심적인 교구 송금이 풍요로운 사제복지를 가져온다고 외치는 이도 있다. 어떤 사제는 죽은 영혼, 특히 낙태 영혼구령을 구실로 미사예물을 챙긴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해도 미사예물은 은연중 기복신앙을 부추기고 신앙의 본질을 왜곡시킬 수 있다.
사제가 미사지향을 하나하나 부를 때 귀담아 듣는 사람이 있을까? 장례, 혼인 등 특별한 미사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착오로 호명에서 빠질 경우 봉헌자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한다. 아마 돈을 주고 산 미사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가난한 이들은 즐비하게 나열되는 미사지향에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 사실 교회는 예물을 받지 않고 백성들, 특히 가난한 이들의 지향대로 미사를 드려주기를 간곡히 권장하고 있다(교회법 945조).
이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교구관계자, 사제 모두 미사예물을 주 수입원의 도구로 삼지 말자는 것이다. 미사예물이란 용어부터 혼란을 가져온다. 미사경문에 예물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표현되는 빵과 포도주를 일컫는다. 참된 의미의 미사예물은 친히 제물이 되시고 제관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다. 그래서 미사는 늘 세상 모든 이를 위해 봉헌된다.
신자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 과연 교회를 찾는가? 사제에게 위로와 힘을 받고자 도움을 청하는가? 본당은 전례와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 그러나 내 삶과는 그다지 관련 없는 곳으로 여기지는 않는지….
신자들 가운데 답답하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쉽게 철학관이나 점집 등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가 적지 않다. 교회가 백성들의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교회는 백성들을 위한 신앙적이고 구체적인 방안들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사목자)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간절히 하느님께 전구드려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쳐주실 때 그를 들쳐 메고 온 동료들의 믿음을 보고 고쳐주셨다(루가 5, 20).
백성들이 이런저런 어려움을 호소하며 부담없이 미사지향을 청하도록 하자. 교우들은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고 따뜻한 마음으로 미사에 참석하지 않겠는가.
물론 교우들 입장에서는 정성을 바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례금 형태의 미사예물도 좋고, 어려운 곳에 스스로 도움을 주는 것으로 미사예물을 대체할 수도 있다. 또 생활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희생과 헌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층 성숙된, 역동적이고 고양된 신앙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참된 의미의 미사예물은 예수님의 살과 피다. 여기에 우리의 희생과 정성이 함께 봉헌되면 아름다운 제물, 살아있는 제물이 되지 않겠는가. 『하느님, 내 제물은 찢어진 마음뿐, 찢어지고 터진 마음을 당신께서 얕보지 아니하시니…』(시 5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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