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를 마친 농민들이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어야 할 때이지만, 쌀을 둘러싼 먹구름 때문에 온통 마음이 무겁고 불안하여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국제연합(UN)이 올해를 「쌀의 해」로 선포한 것은 세계인구 절반이 주식으로 하는 쌀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세계식량위기사태를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영국의 「옵저버」지는, 곧 닥칠 현대판 「노아의 홍수」와 같은 전 지구적인 재앙에 대비하여 식량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미 국방부 비밀보고서」를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쌀은 우리의 주식이며 생명입니다. 또 산소공급, 홍수방지, 수자원함양, 자연경관과 공동체문화 유지, 농촌지역사회 유지와 도시집중예방 등 다원적 기능을 가진 공공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쌀은 단순히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쌀은 하느님께서 주신 창조질서이며 식량주권 자체입니다. 유엔인권위원회나 로마세계식량정상회의의 자료를 비춰 보더라도, 식량주권은 하느님께서 주신 신성불가침의 기본인권이고 나라의 주권입니다.
누구나 안정적으로 식량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누구나 안전한 식량을 공급 받을 권리, 무엇을 먹을까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나아가 무슨 농사를 지을까 종자를 선택할 권리, 한 나라의 식량농업정책을 자주적으로 결정할 권리, 이 모든 것은 어떠한 국제규범으로도 침범할 수 없는 천부의 식량주권인 것입니다. 세상에 생명을 양보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세상에 주권을 거래하자는 법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돈벌이로 이용하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쌀 재협상에서 미국, 중국 등 상대국들이 대폭적인 개방을 요구하고 있어 우리 농민의 7할이 종사하는 쌀농사가 존폐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모자랄 때 사오는 것이지 남아도는데도 강제로 일정량을 사와야 한다고 하는 것은 분명 주권침해이며 하느님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26.9%로 WTO가입 147개국 중 139위, 그것도 쌀을 제외하면 5% 이하인 상황입니다. 그나마 쌀이 자급되어 국민들이 식량안보에 대한 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이제 쌀이 더 개방되어 농민들이 쌀농사를 포기하고 외국산 쌀을 사다먹게 되면 식량공급의 양적 안정성과 질적 안전성을 아무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세계 곡물 수출국은 10여개국에 불과하며, 그것도 미국의 카길 등 5대 곡물메이저들이 장악하고 있어 그들에게 우리의 생명을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9억 인구가 굶주리고 한 시간에 4000여 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어도 이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적인 자연재해로 쌀 생산이 급격히 감소하거나 곡물메이저들이 담합이라도 한다면, 자동차나 휴대폰을 팔아서 아무리 돈이 많아도 쌀을 살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1980년처럼 국제시세의 몇 배를 주고 사와야 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수입쌀은 국내산 쌀과는 달리 생산과정뿐 아니라 저장 운반과정에서의 살균제, 살충제, 방부제 등 수확후 농약처리에 국민건강이 그대로 노출되어 더욱 위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수출하자면 쌀개방은 대세라거나 불가피한 것이라는 주장은 식량안보를 간과한 안이하고 무책임한 것입니다. 오히려 자국 식량농업을 보호 육성하는 것이 추세입니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역할과 임무를 다해야 하며, 다급해진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을 위해 국민 모두가 나서야 합니다. 식량자급률 법제화를 통해 쌀농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소득을 보장하고 공공비축수매를 통해 겨울철 놀리는 땅에 밀, 보리를 심게 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사태에 대비하여 10년전 우리 교회가 도시농촌녹색교류를 통한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해왔기에, 그나마 여기 참여한 사람들은 외풍을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도시농촌 녹색교류 모델은 개신교나 불교에도 전파되고, 정부나 지방자치 단체에서도 농?소?정사업을 펴게 되었으며, 경제계에서도 1사1촌운동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물론 국제 가톨릭농민회를 통해서 다른 나라에도 우리 사례를 나누고 있습니다. 명절 때마다 민족대이동을 방불케 하듯 고향을 찾는 그 마음으로 온 국민이 우리 쌀과 농촌을 지켜낼 것을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남을 「방주」를 준비하는 길이고, 하느님께서 주신 창조질서를 보전하여 녹색은총을 누리는 길이며, 후손에 대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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