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완장」을 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 「완장」에 나오는 주인공이 자신의 하잘 것 없는 저수지관리인의 자리가 대단한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 뻐기고 다니듯이 지금 내가 그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뭐,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그래, 4평이 안되는 컨테이너에서 3년을 살고 있다. 그러나 여름에는 빗물에 이불이 젖을까 스티로폼을 깔고, 겨울에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전기장판을 깐다. 이렇게 생활하는 나에게 더 필요한 것이 뭐가 있을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성당이 무너져 고통받고 있는 하느님보다 먼지에 불과한 비천한 내 집을 보고 먼저 걱정을 할까. 내 불편함이 천주님의 불편함보다 더 우선일 수 있을까. 내 힘듦으로 집 없는 당신이 가려질까 두려워진다.
나는 지금 충분하다. 아니 과분하다. 최소한 필요함에 있어서는. 천주님은 당신의 성당이 무너져 집도 없는 신세가 되셨다. 그리고 당신의 집을 짓는데 돈이 없어 매일 빈 통장을 쥐고 있는 나는 비록 따스함은 없어도,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오히려 내가 자리한 컨테이너라도 성당을 짓는데 도움이 된다면 팔고 싶다. 보잘 것 없는 나, 땅바닥에서 자면 또 어떠랴.
뻘밭에 세워진 50년된 성당이 무너졌을 때, 단식을 하며 160km를 걸었다. 잠은 역이나 길에서 비닐과 신문지를 덮고서 청했다. 그때 꿈에서 「나」를 보았다.
어느 높은 성전 꼭대기에 수단을 입고 올라갔던 나는, 찬란한 하늘의 빛을 본 순간 발을 헛디뎌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쳐 죽었다. 그때 노인 몇 분이 나의 주검을 거두어 성당 바닥에 묻어주었다. 그 처절한 모습이 바로 「나」였다. 이후 나는 이곳 시골의 가난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첫 번째 은인으로 삼아 성당을 지어가고 있다.
성당만 빨리 지어질 수 있고, 눈덩이처럼 커진 빚만 갚을 수 있다면 비록 다른 이들에게는 하잘 것 없어도 어찌 내가 있는 자리를 탐할 것이며, 벌거숭이가 된들 가지 못할 길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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