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큰 밥그릇에 수북히 밥을 담아 내놓은 것이다.
별로 양이 많지 않은 나였지만, 그래도 여기 공소는 처음이요, 정성이라 그 많은 양의 밥을 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배가 불러도 맛있게 먹어드리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는가싶었다.
그런데 자매님들은 식사를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겨우 다 먹고, 『잘먹었습니다』라고 말할 때 뜻밖의 모습을 신자들에게서 발견했다.
실망한 것이다.
『아니, 왜요?』
이야기인즉, 신부들은 음식을 남긴단다. 왜냐하면 신부가 먹는 밥은 은총밥이라고 하여 신부가 공소에 올 때 음식준비에 수고한 이들이 한 숟가락씩 나누어 먹는단다.
그것도 모르고 남기면 소원해질 것 같아 사실 억지로 먹었는데….
이렇게 순수한 이들이 우리들의 시골이다.
빚이 있어도 짜증내지 않고, 기쁨을 잃지 않는 이들이요, 성당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밤에라도 나와서 일을 하는 행복한 공동체이다.
이런 행복함도 뻘밭에 의해 무너진 성전 앞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당 저 성당을 돌아야 하는 오늘이다.
한 성당을 갈 때마다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내가 한 도시에 있을 때도 그랬다. 하루에 몇 번씩이나 외부에서 도와달라 한다. 그 중 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쓰린 가슴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들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어떻게 하지!
비록 내가 가난하고, 성전을 짓고 있지만, 우리 또한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가난을 나누자. 우리가 오늘 힘들어도 가난을 나눌 때 당신은 은총을 주겠지. 가난은 우리의 오늘이요, 나눔은 가난한 예수를 만나야 하는 우리의 생명이다.
오늘 내가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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