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누구 때문에 일이 안된다든지, 배우자 때문에 못살겠다든지, 조건이나 상황을 탓하며 핑계를 댈 때가 있습니다. 피동적이고 주인답지 못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모든 행동이나 반응은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알고 있습니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사람의 행동은, 단순히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일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생래적인 기본욕구(생존 및 생식, 사랑과 소속, 힘과 가치, 자유와 자율성, 즐거움의 욕구 등)가 내적으로 동기화되어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신의 선택이자 시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행동에 책임이 따르고, 자기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고, 또 새로운 행동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지각할 때 먼저 감각 기관을 통하고 또 지식 여과기를 통해서 사물들을 여자, 남자, 책상, 나무 등으로 분별하고, 그 다음에 가치 여과기를 통해서 매력적인 여자, 비싼 책상, 능력없는 남자, 쓸모없는 나무와 같이 부정적이거나 긍정적 혹은 중립적 가치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지각된 세계는 현실 그대로의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라 개인의 지식과 경험에 의해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가 등의 가치가 부과된 주관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행동은 거의 모두 뇌를 비롯한 신경계의 감각과 지각과정의 결과이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카메라에 들어 있는 지식 가치 여과기에 의해 여과되어, 우리에게 친숙한 조직화된 행동으로 나오기도 하고 또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행동을 재조직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배우자와 깊은 대화를 원하는 부인과 대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남편이 함께 산다고 합시다. 부인이 생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퇴근한 남편과 함께 이야기하길 원해서 퇴근해온 남편에게 말을 건네면, 남편은 TV를 보면서 건성으로 듣거나 하품을 하며 지루해합니다. 이때 부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남편이 관심을 기울여 경청해주는 것)과 실제 가진 것(대화를 지루해 하는 감성이 둔한 배우자) 사이의 차이를 느낍니다.
이렇게 바라는 세계와 지각된 세계 사이의 차이가 있으면, 비교 저울이 기울어 갈등신호 혹은 좌절신호를 받게 되고 이 좌절에 대처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때 부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남편에게 오늘은 TV를 그만 보고 얘기 좀 하자고 애교를 부릴 수도 있고, 남편의 행동을 비난하고 잔소리할 수도 있고, 다른 대화 상대를 찾아 친구에게 전화를 할 수도 있고, 침울해 하며 들어가 잠을 잘 수도 있습니다. 부인은 그녀의 행동체계 중에서 잠을 청하는 행동을 선택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여기서 우리는 그녀의 행동을 행동(방에 들어가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는 것), 생각(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없을까), 느낌(우울, 외로움, 슬픔), 신체 반응(표정이 어두워지고 몸이 늘어지는 무거움, 속이 쓰림) 등 네가지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자, 눈을 감고 따라해 봅시다. 온 몸에 땀(신체반응)이 나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공포심(느낌)을 일으켜보겠습니다. 다음에는 초록빛 바다를 상상(생각)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손뼉(행동)을 쳐보겠습니다. 어떤 것이 가장 쉬운가요? 손뼉을 치는, 즉 행동이 가장 쉽습니다.
우리의 신체반응과 느낌은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없지만 생각과 행동은 통제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쁜 기분이 들 때 직접적으로 좋은 기분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행동을 바꿈으로써 나쁜 느낌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와 싸우고 난 후 한 시간 동안 누워 있는 것과, 한시간 집안 청소를 하고 났을 때의 느낌을 비교해 보십시오. 그 부인이 배우자에게 대화를 거절당했다 해도 그때 누워있는 행동을 하지 않고 친구에게 전화해서 속을 털어놓고 대화를 나눈 후에 샤워를 했더라면 다른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또 남편이 몹시 피곤한가보다라고 생각을 바꿈으로써도 나쁜 느낌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가 변하지 않는데 그 정도의 느낌 변화가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삶의 모든 영역에 확대시키고 지속시킬 수 있다면, 인정머리 없는 배우자도, 그 무엇도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바람의 방향은 바꿀 수 없을지언정 돛의 방향을 바꿔 배를 목적지로 가게 할 수 있습니다.
윌리암 글라써 박사는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노래 부르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을 탓하거나 핑계 대고 변명하기보다 순간 순간 주도적으로 책임있는 선택을 통해 기쁘고 감사할 수 있는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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