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다. 그 사람은 천국 문을 지키는 베드로 사도에게 하루만 더 지상에서의 삶을 다시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용케 허락이 되어 자신의 젊은 어느 시기에로 되돌아갔다. 자신은 대청마루에서 졸리운 듯 이리저리 뒹굴고 있고, 아버지는 헛간에서, 어머니는 부엌에서 자신의 일들에 몰두할 뿐 아무도 자신을 주목하여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에게는 귀하디귀한 하루의 시간이건만 그야말로 「아무 일없이」 지나가 버리더란다. 시간을 바라보는 절박함이 전혀 다른 것이다.
시간은 늘 흐른다. 어제도 오늘도. 어제 떠오른 태양이나 오늘 떠오른 태양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평소에는 주어진 시간을 특별하게 주목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해를 시작하는 새 날은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맞고자 한다. 마치 오늘 떠오르는 태양이 어제의 것과는 무관하게 새로운 것인듯이.
우리에게는 이렇게 다행히 매듭을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한 매듭을 지음으로 해서 똑 같은 시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다.
개선되고 발전될 수 있는 나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다. 희망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맺음과 시작은 서로 단절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의미에로의 승화이다.
지나간 시간을 단지 고개 돌려버리는 것만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바람이 절실하지 않은 것이다. 새로운 시작은 「뒤돌아봄」과 「내다봄」이 함께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작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뒤돌아보아야」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었고, 어디에 아픔과 한계가 있었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무엇이 용서되어야 하고 화해되어야 할 것인지를 겸손한 마음으로 살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은 회개이다.
또한 절실한 「내다봄」이 있어야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왜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고 어떻게 그 시작을 맞을 것인지가 먼저 절실해야 한다. 절실한 기다림이 없는 시작이란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작은 희망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이런 회개와 희망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 죽음을 받아들일 각오가 있어야 새로 살아날 수 있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 16, 25).
그래서 맺음과 시작은 단절이 아니라 한 과정인 것이다. 밑도 끝도 없는 허황한 꿈이 아니라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내 삶의 진솔한 진척인 것이다.
스스로는 죽지 않으면서 살기를 원한다면 단절을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철저한 회개도 절실한 희망도 없는 것이 되고 말 뿐이다. 그곳에서는 새로운 시작도 삶도 없다.
늘 뒤만 돌아보는 다툼만 있을 뿐이고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모두가 공멸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자기 편한대로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맺음과 시작은 은총이다. 느낌과 감정으로 주어지는 망상이 아니라 참된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인격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삶을 철저히 돌아볼 수 있고 절실한 바람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리이다. 그것은 내 맘 먹기에 따라 그때마다 달라지는 허황한 것이 아닌 것이다.
현실이 너무도 어렵고 힘들어서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거기가 바로 새로운 시작이 필요한 자리인대야 어찌할 것인가. 끝없는 미몽 속에서 하릴 없이 허덕이다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든든한 내 삶의 중심을 찾아 나를 새로이 세워내야 하는 자리임에야 어찌할 것인가.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마르 8,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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