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깨달음이고 결단이며 삶 자체
한국교회의 예비신자 교리의 일반적인 형태는 지식위주의 강의식 교육이다. 이런 교리방식이 예비신자들의 갈망과 기대에 얼마나 부응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삶과 연관이 없는 강의식 교리는 예비신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우선 끌지 못한다. 처음의 열망과는 달리 그들은 수동적이 되고 출석확인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교리과정 중에 참회와 결단이 그다지 강조되지 않기 때문에 결연한 신앙인의 면모가 부족하다. 교리반이 신자공동체와 분리되어 있어 선배신앙인의 도움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성서 없이 교리기간을 마치고, 말씀을 통한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배우지 못한다. 이런 교리방식은 예비신자들을 중도 탈락하게 하거나 영세 후 냉담 상태로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이런 취약성을 보완한 예비신자 교리방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 신앙의 고질적인 병폐로 신앙과 삶의 불일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치유하는 사목적인 대안은 복음에 입각하여 삶을 성찰하고 살도록 해주는 소공동체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비신자들 역시 소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익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비신자들의 교육은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어른입교예식서(1972)도 밝히고 있다.
소공동체 안에서 예비신자들 역시 기존 신앙인들과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걷게 해야 한다. 소공동체 참여자들은 함께 삶을 나누고 성서에서 해답을 찾고, 생활에서 실천하게 된다. 이는 예수님의 교육법이기도 하다.
열두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자신들의 한 일과 활동들을 낱낱이 보고하면서 양성되어 나갔다(마르 6, 30). 예수님은 신학강의가 아닌 비유와 생활 속의 예화를 통해서 가르치셨고, 백성과 제자들의 삶의 현실에서부터 시작하셨다.
신앙은 체험이며 또한 삶이다. 삶 속에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요한 20, 28)이란 신앙고백이 터져 나와야 비로소 신앙인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이들의 입교동기는 다양하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너나할 것 없이 나름대로 절박한 심정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이다. 구약의 야훼 하느님은 당신백성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을 듣고 인간 역사 안에 개입하시지 않는가(창 3, 7). 유아 영세자도 언젠가는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과 맞대면을 해야 하는 것이다. 즉 삶의 응답으로 교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안에 많은 교리서가 있지만 참된 교리서는 성서일 수밖에 없다. 소공동체는 그 중심에 말씀이 있다. 또 하나의 교리서가 있는데 그것은 신앙의 여정에 동참하는 사람들이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 일을 하신다. 예비신자라 해도 이미 그들안에 성령께서 활동하신다. 참된 교리교사요 선교사명의 주인은 성령이시다.
우리는 아무도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예수는 주님이시다』하고 고백할 수 없다(고전 12, 3). 그래도 교리서를 거론해야 된다면 생활을 나누게 하고(관찰) 성서 속에서 해답을 찾게 하고(판단) 다시 구체적인 생활 속으로(실천) 들어가도록 하는 안내서를 일컬음일 것이다. 말씀속의 해답은 꼭 어떤 해결책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의 현존을 알아채는 것이다. 주님의 옷자락을 만진 군중 속의 여인처럼(마태 9, 20).
강의식교리는 하느님에 대해 설명할 뿐, 하느님 체험을 갖게 해주지는 못한다. 「함께하는 여정」(오스왈드 원작)이라는 서울대교구에서 낸 교리서만큼 좋은 안내책자를 필자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이 책은 신자와 예비자가 공동체를 이루면서 함께 삶과 신앙을 나눌 수 있도록 되어있다.
유다인들은 아이가 학교 가기 전에 글자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한다. 자연이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게 하고 그때마다 성실한 응답으로 학습열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예비신자교리 역시 좋은 신앙생활 습관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그렇다면 예비신자들은 함께 살아 나갈 이웃들, 즉 소공동체 속에서 신앙생활을 익히는 것이 효과적이다. 삶에서 시작하여 말씀을 통해 주님의 현존을 깨닫고 다시 힘차게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신앙은 깨달음이고 결단이며 삶 자체인 것이다. 신앙의 결실은 삶의 변화를 통해서만 얻어질 것이다.
예비신자가 교리지식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공동체 일원으로 스스럼없이 자신을 받아들이고 신앙의 여정을 시작할 마음이 섰다면 세례를 받게 하는 것이 좋다. 사실 본격적인 신앙생활은 영세 후에 시작되는 것이다. 또 이 여정은 하느님의 품안에 안길 때까지 계속된다.
소공동체는 예비신자가 신앙생활을 익히기에 좋은 신앙의 학교요 자녀들이 양육되는 가정과 같은 곳이다. 기존교우 역시 예비신자들과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걸으며 거듭 쇄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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