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방의 「수난성사극」 중에 나오는 「성모영보」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엘리사벳집으로 떠난 마리아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요셉은 그녀가 문간에 나타나자마자 달려나가 기쁘게 맞아들인다. 요셉의 「기쁨이자 사랑」인 마리아를 다시 만나게 된 그에게는 이제 「모든 게 최상의 상태」이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마리아의 불룩한 배에 가닿았을 때 그의 기분은 최악의 상태로 떨어진다. 여기서 시작되는 그의 내면의 독백은 그녀를 의심하는 자아와 그녀를 신뢰하는 자아 사이의 극한 대결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놀랍게도 요셉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사죄를 청한다.
『당신의 순결을 의심한 것을 제발 용서해주구료. 이제부턴 당신을 믿기로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께서 당신 안에 있는 신비를 계시해주었기 때문이오』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 감각의 한계에 머물 때 참으로 타인 안에 있는 신비를 깨닫기 어렵다. 요셉은 오직 천사의 계시를 통해 마리아 안에 있는 신비를 깨달았다. 내가 하느님을 알기전까지 나의 인식은 얼마나 보이는 것과 합리적인 것에만 머물러 있었던가. 그리하여 얼마나 자주 타인 안에 있는 신비를 알아보지 못하고 무시하였던가.
요즘 이냐시오 영성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영신수련을 통해 각자의 묵상내용을 나누면서 나의 이러한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나는 거기 모인 수련자들안에서 더욱 생생하게 조각가 하느님의 모습을 본다. 그분은 성령의 예리한 정을 들고서 우리의 대리석 마음을 당신의 모상대로 열심히 깍고 계신다!
김애련(베리따스 .종교극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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