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적 시간은 특히 종교적, 성직자적 시간이었다. 그것은 한해가 무엇보다도 전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제의적 연표는 중세적 사고의 본질적 특성으로서 그것은 그리스도의 강생이라는 극적인 사건과 부활 그리고 성령강림으로부터 승천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생애를 따라간다. 그리스도교의 시간, 특히 가톨릭의 시간은 이런 의미에서 중세적이다.
그런데 내가 가톨릭이 되면서 나의 사회적 시간은 이런 시대착오적인 전례력의 시간으로 덧대어져 한층 풍요로워졌다.
대학의 개강과 종강으로 이루어져 있던 나의 시간적 연표는 이제 전례력에 따라 작은 오솔길들이 생겨 거대한 상징의 숲으로 인도된다. 거기 상징의 숲에 우뚝 선 가장 큰 생명나무는 십자나무이다.
하루의 시간 역시 삼종기도로 인해 새로운 소리를 의미의 자장으로 끌어들인다. 일상의 사이버 시간속에 태고의 느린 속도로 울려퍼지는 교회의 종소리는 아베 마리아로 시작되는 천사의 음성으로 증폭된다.
민족의 대명절에 덧대어진 「재의 수요일」! 내가 처음 가톨릭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가 하염없이 울었던 날, 거기엔 사순시기의 비장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로부터 내가 죄인임을, 주님의 피로 씻겨져야할 비참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성령안에서 진정으로 거듭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가!
나는 사순시기의 음악을 유달리 좋아한다. 그것은 언제나 나를 초심으로 데려간다. 드디어 바닥을 치고 하느님 품으로 돌아온 그 복된 회심의 시간으로….
『나를 씻어 주소서, 눈에서 더 희어지리다, 하느님 자비하시니 날 불쌍히 여기소서!!』
김애련(베리따스.종교극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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