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교회와의 교류와 나눔통해 창조적 교회로 거듭나야
장면 「하나」 - 중국 베이징의 왕푸징 거리
베이징의 왕푸징 거리는 서울의 명동과 같이 오래된 번화가이며 중국인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나는 그 날 왕푸징 성당 앞 광장 한쪽에 앉아 만나기로 약속한 중국친구를 기다리며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남녀 고등학생(물론 중국인)으로 보이는 이십 여명의 학생들이 풍선을 불며 그 풍선에 뭔가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다 깜짝 놀랐는데, 그들이 쓰고 있던 것은 한글이었다.
『ooo, 사랑해! 너를 기억하며…』와 같은 글이 얼핏 보였다. 풍선을 다 불었는지 그들은 손에 풍선을 몇 개씩 들고 성당 출입문 앞으로 몰려갔다. 성당 앞에 둥글게 둘러선 가운데에 풍선을 쌓아 올리고 나서, 모두 무릎을 꿇고 촛불을 하나씩 켜서 자기 앞에다 세워놓고는 두 손을 모아 눈을 꼭 감은 모습으로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기도하는 동안 쌓아둔 풍선은 바람에 날려 광장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기원이 구경하던 다른 모든 이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듯이. 그때 기다리던 친구가 왔다. 『저 사람들 지금 뭘 하는 거지요?』 하고 묻자 그 친구는 『한국에서 유명한 누군가가 죽었나요? 누군가를 추모하는 것 같아요?』 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한국 유학생들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당시 한국에서 인기 그룹가수 중에 한 멤버가 갑자기 사망했는데 그가 천주교 신자였다는 것이다. 중국의 어린 팬들은 그가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성당 앞에 와서 그를 위한 추모기도를 한 것이다. 종교는 베이징의 신세대 고등학생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장면 「둘」 - 역시 베이징의 내가 살던 집, TV 화면 속
한국의 유명 여자 연예인이 광고를 찍기 위해 중국 어느 지방도시에 왔다. 그녀가 그곳에 머무는 사흘 동안 현지의 모든 매체는 그녀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특히 TV는 위성으로 방송되는 것이라 중국 전역으로 퍼져갔는데 TV 카메라는 그녀의 순간순간을 빠짐없이 포착하고 있었고, 사회자는 최고의 찬사로 그녀를 찬양(?)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그녀의 인기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불현듯 생뚱맞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주일이 되어 그녀가 『오늘은 주일이라 저는 성당에 가야합니다』 라고 말하며 성당에 가는 장면이 중국 전역에 방송된다면, 아!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공산당 간부라도 한번쯤은 성당에 가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선교에 미인계를 쓰자는 오해를 받을만한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는 만일 그녀가 정말 그렇게 움직여준다면 나같이 무능한 선교사 백명보다 훨씬 더 나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나는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6년 동안 살면서 뚜렷한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내심 초조하고 답답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던 가운데 한류를 접하게 되었고 우선은 가슴 뿌듯한 마음이 들면서 한편으론 한없이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부러웠던 이유는 한국 교회에서 비롯된 한류, 즉 가톨릭적(?) 한류의 바람이 중국을 비롯한 이웃나라에 언제쯤이나 불게 될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중국 땅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문화적 한류가 부러웠던 것이다. 경제와 사회분야에서는 해외진출이 일찍이 이루어졌고, 이제 대중문화까지 그 활동무대를 이웃나라들로 확장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 한국 교회는 건강한 신앙의 기초도 있고, 재정적인 면에서도 나눌 수 있는 여유도 있으며, 다른 지역교회가 부러워할 만큼 역동적인 신자들의 신앙활동도 있고, 풍성한 성소의 은총을 받았기에 훌륭한 교회의 일꾼도 많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한국 가톨릭교회는 능력도 충분하고 그 능력을 나눌 적절한 때도 되었는데, 그에 비하여 한국 가톨릭의 한류는 아직 미미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웃교회와 나누고 교류하는데 나날이 적극적으로 우리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류를 통하여 우리의 대중문화가 더 많은 이웃나라에 알려지고, 더불어 그 과정에서 발생되는 이익도 작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더욱 가치 있는 것은 한류를 지속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 문화 스스로가 끊임없이 반성하고 연구함으로써 자신의 경쟁력을 강화하게 되고 더 나은 것을 창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도 이웃교회와 더욱 활발히 교류하고 나눔으로써, 그 나눔의 기쁨을 맛보게 될 뿐만 아니라 더욱 건강하고 창조적인 교회로 거듭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류의 바람이 우리 교회에서도 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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