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마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을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주어라』
유영철은 스무명도 더되는 무고한 이들의 삶을 앗아갔다. 그러고도 뉘우치는 빛이 없으니 정신이상자이거나 사람이 아닌 성싶다. 저 사람을 어찌할까.
『스무 명을 죽였으니 너도 죽어 마땅하다. 아니 스무 번을 죽어 마땅하다』
다윗은 시편에서 이렇게 외친다 『하느님 악한 자를 죽여만 주소서! 숯불을 그 위에 쏟으시고 수렁에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 악한 자는 재앙에 몰려 망하게 하소서』
유영철같은 사람도 죽이지는 말고 종신형에 처하자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되었다. 지난 15, 16대 국회 때도 과반수가 넘는 의원들이 사형폐지안을 발의하였으나 번번이 법사위에 상정도 되지 못한 채 자동폐기된 바 있다. 이번에는 170명이 넘는 의원들이 사형을 폐지하고 종신형을 도입하는 법안을 법사위에 상정하여 오는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반대여론의 벽은 더 높아 보인다. 사람에게는 인과응보의 보복감정이 있으니 그렇다. 못된 짓을 한자는 마땅히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은 정의 관념에도 맞는 듯하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미 사형을 폐지한 나라가 훨씬 더 많고 존치국들도 급속히 폐지 쪽으로 돌아서는 추세다. 「눈에는 눈」이라는 구약의 말씀을 폐하시고 원수마저 사랑하라신 예수님의 새 계명이 아니더라도 세속법인 헌법 제37조에도 이리 써 있다.
『국민의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으되 그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
살인, 강도, 도둑질한 자의 권리는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형벌로 제한할 수 있으나 인권의 핵심이자 「본질적인 내용」인 생명권을 침해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사형을 폐지했어도 흉악범은 오히려 줄었다는 UN보고가 있고, 영국, 캐나다, 미국 등의 조사결과도 마찬가지다. 우리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아프리카, 중남미의 많은 나라들에서도 사형은 이미 폐지됐고 100년 전에 폐지한 나라도 있다. 100년 전 중남미 국가가 지금 우리 사회보다 더 안정되어 있고 흉악범의 사회위협이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유럽대륙에는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가 아예 없다.
문화국가를 자부하는 프랑스에서도 1980년대 당시,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여론이 훨씬 높았지만 의회가 이를 폐지하자 잘했다는 쪽으로 여론은 크게 바뀌었다. 사형수들을 만나보면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은 「잘못」과 「잘못을 범하는 사람」을 구별하라고 가르친다. 다시는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종신형에 처하되, 남은 삶동안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보속의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 정의와 사랑이라는 구약과 신약의 가르침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방안이다.
사형폐지를 통해 우리는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국가를 향해 큰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주교회의 산하에 사형폐지소위원회를 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이를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김형태 변호사 <주교회의 사형폐지소위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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