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시작되었다. 내 마음은 벌써 학기말에 올릴 전례극 공연준비로 부산하다. 그래서 공연에 사용할 성화들을 고르다가 조반니 벨리니의 「피에타」(15세기, 밀라노)에 눈길이 머물렀다. 피에타는 「연민」, 「경건한 마음」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로, 교회미술에서 눈물에 잠긴 성모를 그리거나 조각한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그런데 많은 피에타 중에서도 유독 내 마음을 끄는 것은 바로 이 피에타이다. 여기에 나오는 성모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16세기, 베드로 대성당)에서 처럼 젊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고통스런 얼굴 표정이 너무나 절실하게 그려져 있다. 성모의 눈언저리는 눈물자국으로 어두워보이고 연민어린 시선은 예수의 얼굴에 박혀있다. 그녀의 볼은 예수의 얼굴에 너무나 바짝 붙어 있어서 마치 금방 입맞춤을 하고난 것 같다. 예수의 몸을 안고 있는 성모의 오른 손은 못에 뚫린 아들의 손을 어루만지고 있다. 예수의 옆구리, 터진 상처에서는 빨간 피가 선연히 흘러내리고 있다. 벨리니의 피에타를 보고 있노라니 우리가 공연할 그레방의 「수난 성사극」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성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수야, 내 사랑하는 아가 예수야/슬프도다! 감미로운 추억이여/ 네 어린 시절, 난 기쁨에 넘쳐 널 안곤 했었다/ 널 무릎에 안고 너의 사랑스런 얼굴을 바라보았지/ 너의 겸손과 단순함은 아름다움에 넘쳤단다// 그리고 수도 없이 네게 입맞추며 널 쓰다듬고 돌보아 주었지…// 슬프도다! 지금의 입맞춤은 예전과 다르니/ 하늘의 왕아/ 오늘 너의 치욕스런 죽음을 내 눈으로 보는구나 // 끔찍하고 고통스런 죽음으로 너의 귀한 거룩한 몸/ 덕스럽고 연민어린 너의 몸/사방으로 갈라졌구나』
박완서는 자식을 먼저 보낸 참척의 슬픔을 얼마나 많은 글들을 통해 토해내었던가. 그런즉 성서에서 말이 없던 성모가 여기서 이렇게 자신의 슬픔을 토해낸다고 하여 어찌 말이 많다고 탓할 수 있으랴! 오, 고통의 어머니여, 당신의 고통에 우리 모든 어머니들의 고통을 합하여 아드님께 봉헌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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