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대뇌피질이 있어 능력과 품위를 갖는다.
기술문명과 문화를 가꾸고, 창조적인 작업을 한다.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인간의 삶이 원칙에 의해서 질서정연하게 전개되지 못하고 변칙과 반칙이 자주 등장하여 당혹하게 하는 데에는 인간이 지닌 뇌의 구조에도 원인이 있다. 뇌 과학자 폴 맥클린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크게 파충류의 뇌에 해당하는 뇌간, 포유류의 뇌인 변연계, 인간만이 지닌 인간의 뇌인 대뇌피질로 구성되어 있다.
뇌간은 맥박, 호흡, 소화 등 생존에 가장 중요한 대사 기능을 담당하고, 변연계는 감정, 욕구, 충동과 같은 파충류가 가진 것보다는 좀 더 고차원적이고 포유동물로서의 특징을 드러내는 것을 관장한다. 변연계는 생존에 가장 필요한 본능에 속하는 식욕과 성욕도 관장한다. 뇌간과 변연계에서 관장하는 기능들은 파충류 또는 포유류로서 살아가게 하는 본능에 속하는 것으로서 매우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본능을 인위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다. 그렇지 않다면 자살하는 일이 쉽게 발생할 것이다.
대뇌피질은 외부의 세계를 깊이 인지하고 생각하며 인과율에 따라 앞뒤를 분간하고 판단하는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수행한다. 인간은 대뇌피질을 지니고 있기에 인간으로서의 능력과 품위를 갖는다. 각종 기술문명과 문화를 가꾸고,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을 통해 이전에는 없던 어떤 새로운 창조적인 작업을 한다. 원칙과 변칙 그리고 반칙이 무엇인가를 알고,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뇌피질은 뇌간, 변연계와 독립된 존재가 아니다. 대뇌피질이 활동할 때 언제나 뇌간과 변연계가 동참한다. 그래서 인간이 지닌 본능은 다른 일반 동물들의 본능과 동일하지 않다. 이미 대뇌피질의 작용을 받은 본능, 지성의 안내를 받은 본능인 것이다.
인간의 고유한 기능인 지적 작업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지성만의 작업이 아니다. 대뇌피질이 활동하는 동안에도 뇌간이 언제나 작용하여 맥박, 호흡, 소화 등 대사가 이루어져 생명이 유지되고 있고, 변연계가 함께 작용하여 감정이 개입한다. 그래서 순수 이성적으로는 옳은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감성의 강한 작용을 이기지 못하여 그것을 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원치 않게도 자주 발생한다. 우리는 「내가 싫다는데 무슨 말이 많아!」라든가, 「내가 무조건 좋다는데 무슨 다른 이유가 필요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 역시 그러한 결단의 말을 할 때가 가끔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도 인간의 삶에는 논리를 벗어난 각종 일들이 매일 벌어진다. 원칙이 존중되지 못하고 변칙과 반칙이 비일비재로 파고든다. 그래서 부부간에, 부모자식간에, 동료간에, 노사간에, 정치계에, 학계와 예술계에 의견차이와 부조화, 갈등이 언제나 존재하여 괴로움을 준다.
우리의 뇌를 온전히 이성적인 뇌로 진화시키는 데에는 아무리 열성을 다해도 수천, 수만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깊이 파악하여 인간이 지닌 이 한계상황을 잘 다스려나가는 길만이 원활한 해결 방법이 될 것이다.
전헌호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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