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진정한 행복은 정직과 신뢰에서부터
전통적인 여성상과 반대되는 새로운 여성을 뜻하는 「콘트라 섹슈얼」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들은 사회적 성공과 재정적 독립을 중시하며 결혼과 자녀갖기를 거부한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미국 한국 일본 여성을 예로 들면서 여성이 관습에 따라 결혼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말한다. 이 여성들에게 가정은 이차적 의미이다. 자기가 가장 중요하며 자신의 성공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긴다.
가정이 소중한 이유는 모든 공동체의 기초며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한 가정을 이루는 가족구성원 또한 사람의 선택이 아닌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여기기에 가정은 다른 어떤 공동체와도 구별되는 미덕의 보고며 산실이다. 이 보물은 사회 공동체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격과 삶을 성장시키고 성숙케 하는 토양이기에 가정은 태아에게 탯줄과 같은 역할을 한다.
가정 역시 시대 변화의 충격에서 예외가 아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급격하고 총체적인 변화는 가정을 해체시키고 전통적인 의미의 가정을 대신한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극단적인 예로 동성애자의 결혼 합법화, 결혼을 거부하고 인공수정에 의한 자녀만을 가지려는 시도 등 기존의 종교, 관습, 도덕의 틀로는 담을 수 없는 가족구성원의 변화가 전통적 가정에 도전한다. 변형된 가정의 모습이 시대와 사회의 병적 증상이든, 아니면 불가항력적인 처방이든 여하튼 사람은 어떤 형태든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확인한다.
서울 양천구 목2동 주택가 골목길에 유난히 식구가 많은 한 가정이 있다. 「목동의 집」이라 불리는 이 집의 식구는 9살배기 강아지 「둘리」를 포함해 16명의 대가족이다.
양철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햇살 가득한 200평의 뜰에 이층의 아담한 집이 눈에 들어온다. 옹기종기 벗어둔 15켤레의 신발이 모두 남자의 것인 걸로 봐서 여느 집과는 다름을 짐작케 한다. 식구 중 유일한 외국인인 프랑스 할아버지 한분 빼면 14명의 남자들이 이 집의 독특한 가족구성원이다. 12명의 아버지와 형, 1명의 동생을 모시고(?) 있는 식구의 대들보이자 장남격인 35살 노총각의 짧은 시 한편이 16식구의 가훈이다.
『영원한 단주를 위하여//알코올이란 배를 타고//중독이란 노를 저으며//회복이란 섬, 「목동의 집」에 도착하다』
「목동의 집」엔 노숙인 행려인 실직자로서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이 함께 산다. 자선병원인 요셉의원이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벗어나 새 삶을 찾으려는 오갈데 없는 환자들을 위하여 마련한 가정이다. 가족 중 유일한 외국인인 프랑스 신부님을 빼고는 30대 초반에서 50대의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이 집의 가족 구성원이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라고 해서 생활방식이 여느 일반 가정과 특별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안정된 일터와 고정수입이 없다는 것말고는 하루의 일상은 단순하고 소박하고 평범한 일반 가정에서의 생활이다.
15명의 대가족이라고 해서 엄격한 규율이나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며 환자라고 해서 치료를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훈련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일한 금기라면 「주먹질과 술」뿐이다.
식구들이 구로공단 경비와 공공근로, 공사장 일용직 등으로 출근하고 나면 둘리의 아침식사 차례 시간이다. 둘리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1년전 직장을 얻어 사회로 나갔다가 6개월만에 다시 중독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재수생이다. 이럴 때면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맛보지만 희망 역시 이 절망의 과정을 통하여 온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퇴원하신 신부님의 투병기, TV 뉴스, 첫 출근한 직장의 감회, 공사장에서 입은 상처, 한밤중에 일어나 냉장고 음식을 꺼내 폭식하는 맏형에 대한 염려와 대책, 의견 등이 화제로 오르며 목동의 집 식구들의 하루가 막을 내린다.
우리 가족은 가르치는 사람도 없고 명령이나 지시도 하지 않는다. 특별한 교육도 없지만 하루하루 땀 흘려 가면서 일하고 서로 의지하며 사회에서 부딪히며 생활할 수 있는 힘을 오늘 하루 속에서 기른다.
가정은 기존의 모양을 버리고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기존의 모습만이 가정의 이상적 모형이라고 할 수 없지만 변해가는 가정의 모습 역시 이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목동의 집 식구들을 통해 가정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세상의 변화와 도전에 상처받은 사람이 모여 사는 가정, 14명의 환자 식구 안에서 발견한 희망이라면 가진 것이 없기에 빼앗길 것도 빼앗을 것도 없으며, 아프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힘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이다. 이들이 행복한 비밀이 있다면, 업적도 재능도 성공도 요구하지 않고 다만 정직과 신뢰를 행복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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