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가인 크리스토퍼 도오슨은 현대문명의 위기를 종교와 문화의 분리에서 찾고 있다. 르네상스시대 이후 점차 가속화되어온 세속주의로 인해 문화가 그리스도교로부터 분리되면서 그리스도교는 약화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면 중세 그리스도교가 천년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이 문화생산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진단에서 도오슨은 현대 그리스도교인의 두 가지 과업으로 그리스도교 자체의 풍요로운 문화유산을 회복시키는 일과 그리스도교문화를 이교세계와 교류시키는 일을 들고 있다.
그리스도교문화연구회가 96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그리스도교문화」 강좌를 진행해온 것은 바로 이러한 도오슨의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까닭이다. 제3천년기에 접어든 그리스도교는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찬란한 문화적 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중세는 그리스도교문명의 황금기로서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영적 실재를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드러내려고 하고 또한 감각적인 구체의 배후에서 보다 실재적인 추상을 찾아내고자 하는 열망으로 하나가 되었다. 우리의 연구는 이런 중세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그리스도교 문화 영역 전체에 걸쳐있다.
그런데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연구활동의 성과물들이 교회내의 출판사에서마저 외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오랜 시간을 투신하여, 서구의 그리스도교문화 유산을 집대성해놓은 「성서문화사전」과 「프랑스 종교극 시리즈(중세편)」를 번역해내었는데 둘 다 교회밖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그런만큼 교회 내의 유통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어려움은 비단 나혼자 만 겪고 있는 일이 아니다. 거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릇 모든 새로운 것은 과거의 토양에서 배양되지 않던가! 과거의 토대없이 어떻게 현재와 미래를 세울 것인가? 그리스도교문화를 부활시키려면 우선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몰이해와 무관심의 돌을 치워내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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