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앓는 노숙인·행려인들 역시 중요한 선교의 대상
『1층에는 손가락 발가락이, 2층에는 손목 발목이, 3층엔 팔꿈치와 무릎, 마지막 4층엔 사지가 절단된 채 몸뚱이만 남은 당뇨 합병증 환자들이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셉의원의 단골 당뇨환자에게 내가 협박용(?)으로 애용하는 미국의 한 병원의 입원실 풍경이다.
영하를 밑도는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이 제법 느껴질 때면 노숙인들의 무거운 배낭도 한결 가벼워진다. 겨우내 쫓기며 추위를 피해 잠자리 걱정을 해야 하던 짐을 덜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당뇨병을 앓는 노숙인들에게는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그리 반가운 게 못 된다.
특히 매일 인슐린 주사가 필요한 당뇨환자들이 여름에 치러야 하는 불안과 두려움은 이들에게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다.
노숙인과 행려자들에게 당뇨병은 어느 질환보다도 악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당뇨병이 대체로 일상생활에서의 식생활의 악습과 중독성에서 오는 것이기에 치료 역시 일상생활에서 엄격한 자기 절제와 규칙이 필수적이다.
정상적인 환경의 일반 환자들조차도 지키기 힘든 자기관리를 동가숙서가식 하는 노숙환자들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무료급식소 등을 찾아 겨우 끼니를 해결하는 노숙환자들의 식생활 형태는 상습적인 굶기와 이로 인해 이어지는 과식과 폭식 등으로 점철될 뿐 아니라 음주와 폭음까지 겹쳐 있어 치명적인 당뇨 합병증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그러나 당뇨치료의 첫 출발점인 식생활에서 이들을 위한 해법을 찾을 수 없으니 전적으로 약물치료에 의존하는 길 밖에는 없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먹는 약만으로 당의 수치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환자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먹는 약뿐만 아니라 인슐린 주사에도 불구하고 높이 치솟기만 하는 당의 수치 앞에서 의사인 나는 심문, 회유, 협박, 위협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환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고문(?) 아닌 고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환자들을 향한 엄중한 책임 문책에도 불구하고 매년 여름이면 당뇨환자들의 통제되지 않는 당 수치는 고민거리가 되어왔다. 그러나 정작 환자들의 속 깊은 사정을 알게 된 것은 얼핏 귀에 들어온 푸념을 들으면서였다.
노숙환자가 섭씨 30도를 웃도는 폭염 아래서 냉장보관이 필요한 인슐린 주사약을 매일 주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간혹 리어카 행상이나 일용 잡부 일을 하면서 그날 하루 잠시 인슐린을 보관할 냉장고라도 신세질 양이면 예외 없이 말도 채 꺼내기 전에 문전박대당하기 일쑤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불결하고 간혹 무례하기도 한 노숙인과 어떤 모양이든 인연을 맺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의사이자 가톨릭 신앙인인 내게 노숙환자란 생명과 삶의 벼랑 끝에서 만나는 환자이다.
당뇨를 앓는 환자들의 두 가지 화두, 「밥」과 「인슐린」은 종종 세상 한가운데서 신앙의 삶을 사는 일, 즉 선교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밥이 인슐린이라는 말을 타고 수문장이 열어주는 문을 열고 들어가 몸에서 효과를 발휘하듯 예수님 역시 그렇다.
수문장이 버티고 서 있는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시기 위하여 타고 갈 말이 필요하다. 예수님이 타셔야 할 말, 그것이 선교다.
땅 끝까지의 선교(사도행전 1, 18)에서 매년 여름이면 나의 땅 끝 선교지는 당뇨를 앓고 있는 노숙환자들 사이다.
예수님이 우리 한사람 한사람 사이에서 예수님이 되기 위해 선교가 필요하듯 밥이 밥이 되기 위해서는 인슐린을 필요로 한다.
요셉의원의 당뇨환자들, 노숙인들 역시 중요한 선교의 대상이다.
이 선교지역에서 필요한 것은 냉장고 한 모퉁이면 충분하다. 6cm×2.5cm×2.5cm의 인슐린 주사약 하나가 차지할 공간을 배려해 주는 것으로 땅 끝 선교에 참여한다.
올 여름, 7월의 뙤약볕에 보잘 것없는 노숙인이 냉장고 한 귀퉁이를 신세지자고 할 때 선교의 땅 끝에 와 있음을, 예수님이 타실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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